시간이란?

2022. 10. 15. 09:29기공 강의 연구 자료/시간이란?

시간이란?

 

 

 

 

살바도르 달리, 기억의 지속

The Persistence of Memory, Salvador Dalí,

1931, Museum of Modern Art, New York City,

(출처:  Fro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http://en.wikipedia.org/wiki/The_Persistence_of_Memory

 

 

 

“시간 [時間, time]

 

 

요약

 

시각과 시각 사이의 간격 또는 그 단위를 가리키는 용어이다. 길이, 질량과 같이 다른 물리량을 정하는 기본단위이다. 물리적 시간을 정하기 위해 현재는 원자시계 등을 이용한다.

 

 

본문

 

물리량으로서 객관적으로 정해지고, 길이 및 질량과 함께 다른 물리단위를 구성하는 기본단위로 사용된다. 단위로서는 CGS단위계나 MKS단위계에서는 초(秒)를 사용하며, 실용단위로서 분(1분=60초), 시간(1시간=60분)을 이용한다. 고전물리학에서의 시간은 3차원 공간에서 일어나는 물리현상을 기술하기 위하여 공간좌표와 독립적으로 도입한 매개변수이다.

 

물리현상을 시간적으로 추적함으로써 원인과 결과 사이의 인과관계가 명백해진다. 정확히 반복되어 일어나는 것이 물리법칙에 의하여 보증되는 자연현상이 존재한다면, 그 현상이 되풀이되는 주기를 정함으로써 물리적 시간이 정해진다.

 

예를 들면, 태양에 대한 지구의 자전이 그 현상이고, 평균태양시의 초와 초 사이의 간격이 물리적 시간이 된다. 그러나 지구의 자전속도에는 연주변동(年周變動)과 영년변동(永年變動)뿐 아니라 돌발적인 불규칙변동이 존재하기 때문에, 초의 길이에 10 ⁻⁸ 이상의 불확정성이 생긴다는 것이 밝혀지게 되었다. 여기서 1960년 국제도량형총회는 지구의 자전 대신에 공전에 기초한 초를 시간의 단위로 정하였다. 이 초를 역표초(曆表秒)라 한다.

 

새로운 정의에 의한 초의 길이는 이론적으로는 일정불변하고 이상적이지만, 이것을 현실적으로 순간순간 표시하는 데는, 그 정확도가 기껏해야 10 ⁻⁸ 정도밖에 나타낼 수 없다. 한편 1950년 무렵부터 분자나 원자가 흡수 또는 방출하는 에너지의 일정한 진동주기를 이용하는 연구가 추진되어 정밀도가 높은 세슘원자시계가 개발되었다. 이러한 이유로 1967년 국제도량형총회는 세슘원자시계의 원자초를 채택하게 되었다. 세슘원자시계는 세슘원자의 바닥상태[基底狀態]가 가지고 있는 두 개의 초미세구조 준위 사이의 전이진동(轉移振動)을 검출 ·이용한 것이다.

 

역표초 사이에 있는 진동수를 국제적으로 측정하여 9,192,631,770 진동으로 결정하였다. 즉, 세슘원자가 위의 수와 같은 진동을 하는 시간이 역표초가 된다. 이것이 1967년 국제도량형총회에서 다시 채택된 원자초의 정의이다.

원자초는 원자시계에 의해 10 ⁻¹² 정도의 정확도로 시각을 나타낼 수 있다.

 

한편 상대성이론에 의하면 모든 현상의 추이시간(推移時間)은 그 현상이 놓여 있는 공간의 상태(중력장의 영향)에 지배되고, 관측자에 대한 상대운동에도 영향을 받는다. 이것은 여러 실험에서 확인되고 있다. 즉, 시간과 3차원 공간은 서로 독립적이 아니라 4차원 시공간으로 생각할 수 있으며, 4차원 시공간의 회전을 로런츠변환이라 하는데, 이 변환에서는 시간좌표와 공간좌표가 대등한 변환을 받는다. 따라서 엄밀한 의미에서 보편성 ·균일성 ·객관성을 갖춘 절대적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한 상대론적 영향은 일상의 세계에서는 너무 작아 나타나지 않지만 원자시계의 정확도가 현재보다 더 높아지면 그 영향을 무시할 수 없게 되어 시간의 단위를 정의하는 데 문제가 야기될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면 지구중력장의 영향은 고도차 1 km에 대하여 시간 차가 3×10 ⁻¹³ 초에 이른다. 한편, 심리적 시간과 생리적 시간은 물리적 시간과 달라서 개인의 생리조건이나 경험의 질 및 양에 좌우되는 주관적 시간이다.

 

예를 들면, 같은 길이의 물리적 시간일지라도 유년기의 생리적 변화는 장년기 ·노년기의 변화보다 그 정도가 심하다. 또 장년기를 지나면 세월의 흐름이 빠르게 느껴지고, 강렬한 경험이 많이 쌓이면 시간이 길게 느껴지는 등 심리적 및 생리적 시간은 보편적 ·물리적 시간에 대하여 주관성이 강한 개인적인 시간이라고 할 수 있다.“

 

(출처: NAVER 백과사전)

 

 

 

 

 

살바도르 달리, 기억의 지속의 분해

The Disintegration of the Persistence of Memory,

Salvador Dalí, 1952-1954,

Salvador Dalí Museum,St. Petersburg, Florida

(출처:  Fro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http://en.wikipedia.org/wiki/The_Disintegration_of_the_Persistence_of_Memory

 

 

 

“시간

 

시간(時間, time)은 사물의 변화를 인식하기 위한 개념이다.

시간에 대한 이해를 시도하는 것은 오랫동안 철학자와 과학자들의 주된 관심사였다. 시간의 의미에 대한 여러 갈래의 폭넓은 시각이 존재하기 때문에 논쟁의 여지가 없는 명확한 시간의 정의를 제공하는 것은 어렵다. 이 문서는 시간과 관련된 주요 철학적, 과학적 쟁점에 대해 말하고 있다.

 

과학자들과 기술자들은 시간의 측정에 관심을 기울였고 천문학을 통해 동기가 부여되었다. 시간은 또한 경제적 가치를 지님으로써 사회적으로도 중요한 문제의 하나이다.

시간은 작가, 화가와 철학자들에게도 오랫동안 중요한 테마였다. 시간의 단위는 사건들 사이의 간격과 그 지속 기간에 대한 양으로 생각되어 왔다.

 

규칙적으로 발생하는 사건들과 하늘을 가로질러 지나가는 태양의 육안 운동, 달이 차고 기우는 변화, 진자의 진동처럼, 명백하게 주기적으로 운동을 하는 물체들을 시간의 단위에 대한 표준으로 오랫동안 사용하여 왔다.

 

 

물리학에서의 시간

 

연속된 사건의 변화를 시간이라고 한다.

시간이 왜 흘러가는지에 대한 설명은 여러 가지 있지만 그중에 한 가지는 바로 엔트로피이다.

열역학 제2법칙은 "우주의 총 엔트로피는 항상 증가한다"이다.

엔트로피가 증가함으로써 시공간의 에너지분포가(그것이 물질이든 공간이든) 변하기 때문에 시간이 흘러간다고 말할 수 있다. 여기서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만약 우리가 우주의 총 엔트로피를 감소시킬 수 있다면, 이른바 엎질러진 물을 주워 담고 깨진 계란이 다시 원래상태로 돌아가는 등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

 

참고: 시간이 사건의 측정을 위한 인위적인 단위에 불과한지 아니면 사건과는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물리학적 의미를 같는 어떠한 양인지는 정확히 알려진바 없다.

 

용어

 

한자어 "時間"은 일본에서 영어 "time"을 번역한 근대적 개념어로서 한국에서도 사용되고 있다. 한국에서는 그 전에 "시각(時刻)"이라는 전통적 용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출처: 위키백과 ―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살바도르 달리, 구체들의 갈라테아

Galatea of the Spheres

Salvador Dalí, 1952 

(출처:  Fro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http://en.wikipedia.org/wiki/Galatea_of_the_Spheres

 

 

 

"시간 (물리학) [時間, time]

 

과거로부터 현재를 통해 미래로 움직이는 비(非)공간적인 연속체(連續體).

수수께끼 같은 시간의 개념은 흐르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진행은 이해하기 힘들다. 예로부터 시간은 관측할 수 있는 세계가 속해 있는 3차원과 따로 분리하여 생각했으나, 오늘날의 현대 물리이론은 시간과 공간을 시공간 연속체라고 하는 단일한 양으로 통합시켰다.

 

철학자들은 시간에 대한 고찰을 할 때 이것을 2개의 범주로 나눈다. 영국계 미국의 후기 형이상학자 앨프레드 노스 화이트헤드와 시간을 연속적인 것으로 생각하는 과정철학자들은, 시간의 흐름이 중요한 형이상학적 사실이기는 하지만 그 흐름은 비합리적인 직관에 의해서만 이해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반면에 시간을 불연속체의 무한한 집합으로 생각하는 철학자들은, 시간의 흐름이나 시간을 통한 인간의 진보는 환영이라고 주장한다. 과정철학자들은 미래는 열려 있고 과거는 불변하다고 주장하는 반면, 시간의 불연속성을 주장하는 철학자들은, 과거를 바꾼다는 말과 같이 미래를 변화시킨다는 말도 무의미하다고 주장한다.

 

시간에 대한 서로 다른 철학적 해석은 역사 전반을 통해 지속된 시간에 대한 여러 가지 관점을 반영한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파르메니데스와 제논(BC 6~5세기)은, 변화는 논리적으로 생각할 수조차 없으며 겉보기와는 달리 현실은 유일하며 움직이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엘레아 학파). 즉 시간은 환영이라는 것이었다. 시간의 흐름이 환영이라는 관념은 특정 인도 철학자들의 주의(主義)나 불교와 같은 종교의 교리이기도 하다. 반면에 그리스의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의 제자와 같은 고대인들은, 시간의 흐름은 현실의 본질이라고 주장했다. 사건을 윤회적인 관점과 직선적인 관점으로 나누는 사상가들과 함께 시간에 대한 다양한 해석은 궁극적으로 인류역사에 대한 관점이나 행위에 대한 규범에 큰 차이를 만들었다.

 

시간에 대한 윤회적인 관점은 힌두인, 고대 그리스인, 중국인, 아스텍인들 사이에 널리 성행했으며, 어느 정도는 현대 서구사회에서 재현되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시간은, 고전적으로 음(陰)과 양(陽) 사이의 변화에 대한 중국인들의 관념으로 표현된 서로 다른 리듬으로 움직인다. 여기에서 음은 수동적인 여성의 원리이고, 양은 활동적인 남성의 원리이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인 엠페도클레스는 음과 양의 등가물(等價物)은 사랑과 투쟁이라고 생각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시간에 대한 직선적인 관점에서 시간의 흐름은 순환하지 않으며 시작과 끝이 있다고 주장했다. 몇몇 사람들은 만약, 시대를 초월하는 어떤 힘이 시간의 흐름을 조정할 수 있다면, 앞에서 언급한 시간에 대한 제한들은 상상할 수 있다고 생각했으며 시간을 창조하고 없애는 신(神)이 때때로 이러한 작용을 한다고 생각했다.

 

시간에 대한 초기의 과학적 개념은 아이작 뉴턴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그는 절대시간(絶對時間)을 붙박이 별의 겉보기 운동으로 측정된 겉보기 시간과 구별했다(→ 천체역학, 고전역학). 뉴턴의 절대시간은 이상적인 시간척도였으며, 그의 관점은 독일의 철학자 이마누엘 칸트의 사상을 형성시키는 데 도움을 주었다. 칸트는 시공간이 미지세계의 일부분이 아니라 현상학적 사실이라고 주장했다. 뉴턴의 연구가 시간의 성질에 대한 과학적 연구의 기초를 세우면서, 뉴턴 역학의 많은 것들이 일정한 시간의 주기를 갖는 계에 관련을 두게 되었다. 시간을 통해 전개되는 계에 대한 연구는 19세기에 처음으로 시작되었다.

 

시간과 현대 물리이론의 완전한 통합은 20세기로의 전환기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과 헤르만 민코프스키의 독창적인 연구 이후로 중요한 문제가 되었다.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에서 시공간은 빛의 속력에 가깝게 움직이는 물체에 대해 직관과 다르게 작용한다. 운동하는 물체의 길이는 운동방향으로 줄어들고, 움직이는 시계는 정지한 시계보다 더 느리게 가는 것으로 관측된다. 민코프스키는 이러한 두 현상이 일반적인 3차원 공간에 시간을 덧붙인 4차원 시공간 좌표계(座標系) 안에서 이해될 수 있음을 보였다. 시간은 아직까지 정의하기 어려운 양이지만 오늘날 가장 정확하게 측정된 물리량이라는 것은 다소 모순되는 것 같다. 많은 시간의 척도가 개발되어 왔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지구 자전을 바탕으로 하는 자전시, 천체의 운동방정식에서 그 역할에 따라 정의된 역학적 시간, 그리고 원자과정이 극도로 규칙적인 것을 바탕으로 하는 원자시 등으로 범주를 나눌 수 있다.

 

원자시계는 정밀도가 매우 높기 때문에 실제로 빛의 속력보다 훨씬 느린 일상적인 상황에서 상대론적 효과에 의해 예견되는 미세한 시간의 차이를 발견하고자 할 때 사용할 수 있다.

1태양일(太陽日)을 24시간, 1시간을 60분, 1분을 60초로 나누는 자전시는 그 기원이 고대에 있지만, 대략 1600년경에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다. 지구의 자전은 별과 태양이 매일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 태양일은 단순히 관측자의 천구 자오선을 통과하는 태양이 다시 그 지점을 통과할 때까지의 시간 간격이다. 물론 지방평균태양시는 경도에 따라 다르며, 시간은 경도 1°씩 동쪽으로 이동할 때마다 4분씩 앞선다.

 

뉴욕 새러토가 스프링스에 있는 학교 교장인 찰스 F. 다우드는 1869년 시간대 설정을 제안하면서, 이 시간대 안에 있는 모든 지역의 시간을 같게 했다. 이 착상은 1883년에 미국과 캐나다 철도에 의해 채택되었다.

1884년 10월에는 워싱턴 D. C.에서 개최된 국제회의에서 24개의 표준시간대가 채택되었다. 본초자오선(本初子午線)은 잉글랜드 그리니치 천문대를 지나는 선으로 설정되었으며, 시간대가 다르면 1시간을 단위로 하여 서로 다른 시간을 설정했다. 그러나 주어진 시간대 안에서는 분과 초가 서로 같다. 시간대를 채택함에 따라 경도 180° 근처인 태평양 중앙을 구불구불하게 가로지르는 날짜변경선이 설정되었다. 날짜선을 넘어 서쪽으로 여행할 때는 달력에서 하루를 더하고, 반대로 동쪽으로 지나갈 때는 하루를 늦춘다.

 

1925년초에는 하루의 시작을 정오(正午)에서 자정(子正)으로 바꾸었다. 그리니치 평균시(GMT)는 그리니치를 지나는 본초자오선을 표준시로 사용했지만, 정오에서 자정으로 시작점을 옮김에 따라 혼란이 야기되었다. 그래서 1928년 국제천문학연합(IAU)에서는 세계시(世界時)를 채택하게 되었다. 1955년 IAU는 극운동(極運動)에 따라 서로 약간씩 다른 몇 개의 세계시를 제정했다.

지구의 자전속도를 바탕으로 하는 모든 시간법이 갖는 어려움은 지구의 자전이 완전히 균일하지 않다는 것이다. 자전속도의 변화는 조석마찰(潮汐摩擦), 중심핵의 운동, 그리고 계절적 기상현상으로 인해 발생한다.

 

중심핵의 운동에 의한 자전의 불규칙한 변화와 기상현상에 의한 자전의 주기적인 변화는 시간에 따라 자전속도를 감소시키는 조석마찰에 의한 변화 때문에 무시되곤 한다. 지구 자전이 느려짐에 따라 이를 조정하기 위해 협정세계시라는 시간법이 1960년대초에 도입되었다. 이것의 접근원칙은 자전 기준을 원자시계로 보정한다는 것이다. 2개를 일치시키기 위해 필요할 때마다 윤초가 협정세계시에 삽입되는데, 특정 월(보통 6월이나 12월)의 마지막 1분을 61초가 되도록 하는 것이다. 1972년로 이후 1년에 약 1윤초가 삽입되어왔다.

 

2번째로 중요한 시간척도인 역학적 시간은 가장 민감한 지표로 하늘에서 움직이는 달의 운동을 근거로 한다. 그러나 조석마찰이 고려되면서 단순하던 방법이 복잡하게 되었다. 1976년 IAU는 1984년초의 역서에 사용하기 위해 역학적 시간에 대한 2개의 척도를 정의했다. 첫번째인 질량중심의 역학적 시간은 상대론적 효과가 고려된 천체의 운동방정식으로부터 결정된다. 이 방정식은 태양계의 무게중심 또는 질량중심에 대해 상대적으로 구한다.

 

2번째로 지구 역학적 시간에서는 상대적인 효과가 무시된다. 1984년 1월 1일 이후 〈천문역서 The Astronomical Almanac〉에 나타난 천체의 좌표들에 대한 표(역표)는 캘리포니아 패서디나에 있는 제트 추진연구소의 매우 정밀한 자료를 바탕으로 한다. 이 연구는 태양·달·행성의 운동방정식에 대한 연립 수치적분(數値積分)을 포함한다. 특정 시간에서 천체의 좌표와 속도는 레이더, 레이저 빔, 우주선에 의한 정확한 거리 측정, 광학적인 각(角) 관측, 그리고 원자시계를 토대로 한다.

 

3번째로 중요한 시간척도는 원자현상의 규칙성을 바탕으로 한다. 원자는 연속적인 에너지를 흡수 또는 방출할 수 없는 것으로 판명되었다. 즉 에너지는 광자라고 하는 덩어리로만 흡수 또는 방출될 수 있으며, 원자는 불연속 에너지 상태로만 존재할 수 있다. 원자는 한 상태에서 에너지가 낮은 다른 상태로 전이할 때 특정 진동수의 빛을 방출한다. 이 빛의 진동수는 초당 진동횟수(㎐)로 측정되므로 이른바 원자시계라는 정확한 시간표시기가 사용된다.

 

1955~58년에 국립물리연구소와 미해군 천문대는 마이크로파에 의해 자극을 받는 세슘 원자에서 방출된 복사의 진동수를 결정하는 실험을 수행했다. 실험자들은 세슘-133(133Cs) 원자의 전이 진동수를 91억 9,263만 1,770Hz로 측정했다. 이 실험을 통해 세슘-빔 원자시계가 도입되었으며, 1967년에는 1초를 세슘 원자에 의해 방출 또는 흡수된 복사의 주기인 91억 9,263만 1,770Hz와 같다고 다시 정의했다(→ 국제단위계). 이러한 시간은 몇 가지 장점이 있다. 즉 시계를 작동시키는 기본 진동수가 변하지 않으며, 분수오차(fractional error)는 거의 무시될 수 있고 사용하기 편하다는 것이다.

 

초기의 시험 이후 수천 개의 세슘 시계가 상업적으로 제작되어 작동하고 있는데, 1개의 무게는 약 32kg이다. 몇몇 실험실에서 진동수의 1차 표준기로 사용하기 위해 더 큰 세슘 시계를 제작했다. 그밖에 세슘 이외의 다른 원소를 바탕으로 한 원자시계도 개발되었다. 하버드대학교의 연구원들은 진동수가 약 14억 2,040만 5,751.77Hz인 수소 메이저(불연속 마이크로 파원)로 조절되는 시계를 만들었는데 어떤 메이저의 진동수는 몇 시간 동안 약 10-14h 이내로 안정성이 유지된다. 루비듐 원자를 바탕으로 한 시계도 만들었으나, 세슘 시계만큼 정밀하지는 않았다.

 

원자시계를 바탕으로 한 시간척도인 국제원자시는 약 175개의 상업용 세슘 시계에 의한 1일 척도와 함께 약 6개의 세슘 원기로부터 얻어진다. 이 시계와 원기는 전세계적으로 약 30군데의 실험실과 관측소에 있다. 이 시계는 매우 정밀해서 이들 중 2개는 서로 1,000년에 0.003초 이하 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많은 나라에서는 정확한 시간과 진동수를 무선으로 방송하고 있다. 항공기에 탑제된 세슘 시계는 전세계의 시계와 맞추기 위해 사용되며, 1962년 이후에는 인공위성이 멀리 떨어진 시계를 위해 이와 비슷하게 이용되고 있다.

 

4번째 시간척도는 펄서에 의해 제공된다. 펄서는 자기장축과 자전축이 일치하지 않는, 빠르게 자전하는 중성자별인 것으로 생각된다. 이 별이 자전함에 따라 일정한 주기로 강한 전자기복사 펄스를 방출한다. 펄서는 복사를 방출함에 따라 자전속도가 느려지지만, 그 주기는 증가하여 시계로 계속 사용할 수 있다. 몇몇 펄서를 계속 관측하면 지구의 궤도 위치를 더욱 정밀하게 측정할 수 있다. 그결과 다른 행성에 의한 지구 운동의 섭동과 관련된 더욱 정밀한 자료를 얻을 수 있어서, 이러한 행성들의 질량을 더욱 정밀하게 계산할 수 있다.

 

한 원자핵이 다른 핵으로 방사성붕괴를 하는 것도 아직까지 또다른 시간척도로 사용되고 있다(→ 방사성 연대측정법). 원자 하나의 수명이 어떤 값을 갖는다면, 눈에 보이는 시료 원자가 절반으로 붕괴하는 시간을 측정할 수 있으며, 이러한 이른바 반감기(反減期)는 훌륭한 시간표시기이다. 예를 들어 암석의 나이는 방사성 원소와 그것의 붕괴 생성물의 비를 측정하여 구할 수 있다. 우라늄·칼륨·루비듐의 붕괴는 지구에서 발견된 가장 오래된 암석의 나이(약 35억 년)를 측정하기 위해 사용된다. 달의 암석과 운석은 약 45억 년이며, 이것은 지구 나이와 거의 같다.

 

또한 500~5만 년 범위 내의 생물체 나이는 방사성 탄소 연대측정법에 의해 구해질 수 있다. 유기체가 살아 있을 때, 그것의 몸체에는 안정한 탄소-12(12C)의 원자 1,000억 개 가운데 우주선으로부터 대기중에 형성된 방사성 탄소-14(14C)의 원자가 약 1개 정도 있다. 유기체가 죽으면, 대기와의 탄소교환을 멈추고 12C에 대한 14C의 비는 5,730년의 반감기로 감소하기 시작한다. 따라서 이 비의 측정을 통해 유기체의 나이를 알아낼 수 있다."

 

(출처:  DAUM 백과사전, http://enc.daum.net/dic100/contents.do?query1=b13s1548a  )

 

 

 

“크로노스(Chronos)

 

그리이스 신화에서, 소크라테스 이전의 작품에서 크로노스는 시간의 인격화라고 말해진다. 그의 이름은 “날들”을 뜻하고 Khronos(그리이스어로 번역) 또는 Chronus(라틴어판)으로 양자택일하여 철자를 쓴다. 타이탄, 크로누스(Cronus)와 혼동하지말 것.

 

In Greek mythology, Chronos (Ancient Greek: Χρόνος) in pre-Socratic philosophical works is said to be the personification of time. His name actually means "days" and is alternatively spelled Khronos (transliteration of the Greek) or Chronus (Latin version). Not to be confused with Cronus, a Titan.

 

크로노스는 육체를 가지지 않은 신으로 상상 되어졌다. 3개의 머리를 가진 뱀의 모습의 수소, 그리고 사자. 그와 뱀의 모양인 아나케(불가피)인 그의 배우자는 코일모양으로 감기면서 최초의 세계 알을 회전했다 그리고 땅, 바다 그리고 하늘의 질서 잡힌 우주를 형성하기 위하여 세계 알을 쪼개었다.

 

Chronos was imagined as an incorporeal god. Serpentine in form, with three heads—that of a man, a bull, and a lion. He and his consort, serpentine Ananke (Inevitability), circled the primal world-egg in their coils and split it apart to form the ordered universe of earth, sea and sky.

 

 

크로노스, 조지 울프의 묘지위에서 자고 있는

Chronos, sleeping on Georg Wolff's grave

 

그는 그리이스 로마풍의 모자익에서 황도의 수레바퀴를 돌리고 있는 사람으로 묘사되었다. 종종 그 인물은 신을 지칭하는 공통적인 양자택일적인 이름인 에온(영원한 시간)이라고 명명된다.

크로노스는 보통 “의인적 시간”으로서 긴 회색의 수염을 가진 나이 많은 현자로 그려진다. 의원적인 뿌리가 khronos/chronos인 몇몇 영어 단어는 chronology(상대연대), chronic(만성의), and chronicle(연대기)이다.

 

He was depicted in Greco-Roman mosaics as a man turning the Zodiac Wheel. Often the figure is named Aeon (Eternal Time), a common alternate name for the god.

Chronos is usually portrayed through an old, wise man with a long, gray beard, such as "Father Time." Some of the current English words whose etymological root is khronos/chronos include chronology, chronic, and chronicle."

 

(출처: 위키피디아,  Fro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카이로스 (Kairos) 

 

 

프란체스코 살비아티에 의하여 16세기의 프레스코 벽화에 그려진 카이로스

Kairos as portrayed in a 16th century fresco by Francesco Salviati 

 

카이로스는 바른 또는 적당한 순간을 뜻하는 고대의 그리이스어이다. 고대의 그리이스 사람들은 시간을 위하여 두 단어를 가졌다, 크로노스와 카이로스. 전자는 연대기적인 또는 순차적인 시간을 언급하고, 후자는 무언가 특별한 일이 발생하는 시간의 결정되지 않은 주기의 순간 그 사이에 있는 시간을 의미한다. 그 특별한 일은 누가 그 단어를 사용하고 있나에 달려있다. 크로노스는 양적인데 반하여, 카이로스는 질적인 성질을 가지고 있다.

 

Kairos (καιρός) is an ancient Greek word meaning the right or opportune moment. The ancient Greeks had two words for time, chronos and kairos. While the former refers to chronological or sequential time, the latter signifies a time in between, a moment of undetermined period of time in which something special happens. What the special something is depends on who is using the word. While chronos is quantitative, kairos has a qualitative nature."

 

(출처: 위키피디아, Fro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사진 출처: NASA 홈페이지) 

    http://mix.msfc.nasa.gov/IMAGES/MEDIUM/8111969.jpg  

 

우주 비행의 새로운 시대가 1981년 4월 12일 시작되었다. 첫번째 우주 왕복선 임무(STS-1)가 발사되어지는 것이 그것이다. 마샬 우주 비행 센터가 우주 왕복선을 위한 추진 시스템을 개발하였다. 이 사진은 존 영과 로버트 크리펀 두 우주인이 탄 우주 왕복선 궤도 비행체 콜롬비아호의 발사 장면을 나타낸다. 

 

The new era in space flight began on April 12, 1981. That is when the first Space Shuttle mission (STS-1) was launched. The Marshall Space Flight Center developed the propulsion system for the Space Shuttle. This photograph depicts the launch of the Space Shuttle Orbiter Columbia manned with two astronauts, John Young and Robert Crippen.

(출처: NASA 홈페이지, http://mix.msfc.nasa.gov/abstracts.php?p=1862  )

 

 

가변적인 시간

 

"원자시계에 의한 측정

 

1971년 10월 세인트루이스 워싱턴 대학의 하페일과 리처드 키팅은 휴렛 페커드사에서 만든 세슘-빔 시계로 실험을 했다.  동쪽으로 가는 비행기와 서쪽으로 가는 비행기에 각각 시계를 싣고, 두 개의 시계는 해군관측소에 두어 지구계에 고정 시킨 후 시간을 측정했다.  비행기는 광속의 약 100만분의 1 이하의 속도로 날기 때문에 시간지연효과는 극히 적었으나 시계가 워낙 정확하여 오차의 측정은 가능했다.

 

시간차에 대한 측정결과 동쪽으로 여행한 시계는 시간을 잃고(천천히 가고) 서쪽으로 여행한 시계는 시간을 얻는다(빨리 간다)는 실험 결과를 얻었다.  이는 지구의 자전 때문에 날아가는 시계는 지구에 고정된 시계보다 빠르거나 느리게 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수상대성 이론이 증명된 것이다. 

 

(1ns = 나노초: 1ns = 10-9 s, 10억분의 1초)

 

                         비      행
 
                             예        측
 
                        측정 결과
 
 
동쪽 방향
 
-40 ± 23 ns -50 ± 10 ns
 
서쪽 방향
 
275 ± 21 ns 273 ± 7 ns

 

 (출처: http://www.cosmoscan.pe.kr/time/frame%28time%29.htm  )

 

 

 

 

세슘 원자 시계

(출처: 과학 동아, 2007년 06월 22일)

http://imagesearch.naver.com/search.naver?where=idetail&rev=5&query=%BC%BC%BD%B7%BD%C3%B0%E8&from=image&ac=1&sort=0&res_fr=0&res_to=0&merge=0&spq=0&start=2&a=pho_l&f=nx&r=2&u=http%3A%2F%2Fblog.naver.com%2Froma714%3FRedirect%3DLog%26logNo%3D70018874775&thumbnail=http%3A%2F%2Fthumbview02.search.naver.com%2Fthumbnails%3Fq%3Dhttp%3A%2F%2Fblogfiles.naver.net%2Fdata19%2F2007%2F6%2F22%2F194%2F%25BC%25BC%25BD%25B7%25BF%25F8%25C0%25DA%25BD%25C3%25B0%25E8-roma714.jpg&signature=116212338082&gdid=90000003_00000000000000104D733D97

 

  

 

"뉴턴 1994년 9월호 <시간의 늦음을 확인한다.>

 

특수 상대성 이론이 예언하는 시간의 늦음을 실제로 확인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방법을 생각할 수 있다. 그 하나는 광속에 가까운 속도로 운동하는 탈 것의 시계와 지상의 시계를 조사하는 방법이다. 또 하나는 매우 정밀한 시계를 준비하여 근소한 시간의 늦음을 관측하는 방법이다.

 

매우 정밀한 시계는 실제로 존재한다. 시속 1000 km의 제트기에 정밀한 원자 시계를 싣고 약 10 시간을 비행한 다음, 지상의 시계와 비교하는 실험을 통해 상대성 이론이 예언하는 시간의 늦어짐(약 1억분의 2초)을 확인하였다. 최근에는 원자 시계를 써서 지구 전체로 시간을 동기화(똑같이 맞춤)하여 '국제 원자시(International Atomic Time)'을 설정하고 있다. 그 정확도는 100 조분의 1 초 이하이다. 이것은 상대론적 효과를 정확히 계산에 넣지 않고서는 실현할 수 없는 일이다. 첫번째 방법은 현재 인간이 만든 탈 것으로는 확인할 수 없다.

 

그러나 우주에서 날아오는 소립자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우주에서 내리쏟고 있는 우주선(우주에서 날아오는 광선) 안에 뮤온(muon; μ입자)이라는 것이 있다. 이 입자의 수명은 100 만분의 2 초로 매우 짧아서 초속 30만km의 광속으로 날아도 붕괴될 때까지 600 m밖에 달릴 수 없다. 그런데 실제로는 10여 km의 상공에서 형성된 뮤온이 대기권을 지나 지구에까지 날아온다. 초고속으로 운동하는 뮤온 자신의 시간이 늦어지기 때문에 지상에 도달할 때까지의 시간은 입자에게는 충분히 길고, 따라서 붕괴하지 않고 지상에 도달한다." 

 

(출처: http://astronote.org/board/index.php?print=&menu=7255&table_name=astro0&job=view&idx=12312&page=5&order=desc&sort=idx&&search_title=&search_word    

)

 

 

 

(출처: NAVER 백과사전)

http://100.naver.com/100.nhn?type=image&media_id=488028&docid=325180&dir_id=05020608

 

  

"GPS에 이용된 상대성이론

 

차량항법장치는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을 이용한 것이다. 이 시스템에 이용되는 GPS 인공위성에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 이용된다. GPS 정보는 지구 주위를 돌고 있는 24개의 GPS위성이 알려준다.

 

위성 안에는 가장 정확하다는 원자시계가 있는데 위치를 정확히 알기 위해서는 이 시계가 지구 위에 있는 시계와 정확히 같이 움직여야 한다. 그러나 위성이 너무 빨리 움직이기 때문에 상대성 이론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 문제다.위성은 시속 1만4000km의 속도로 지구 주위를 돈다.

 

상대성이론에 따르면 빠르게 이동하는 물체 안에서는 시간이 느려진다. 일상생활에서는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경우가 거의 없지만 위성은 다르다. 미국 워싱턴대 클리포드 윌 교수에 따르면 위성에서는 하루에 7밀리초(1ms=1000분의 1초)씩 시간이 느려진다.

 

더 큰 문제는 중력이다. 위성은 지표면에서 2만km 높이에 있기 때문에 중력이 표면의 1/4에 불과하다. 중력이 약한 곳에서는 시간이 빨리 가므로 - 실제로는 외부 관찰자가 볼 때 시간이 빨리 가는 것처럼 보인다 - 이번에는 위성 시계가 지표면보다 더 빨리 가서 하루에 45ms나 더 빨라진다.

 

2가지 효과를 모두 고려하면 위성에 있는 원자시계는 지표면보다 38ms나 빨리 가게 된다. 따라서 GPS 위성은 매일매일 이 정도의 오차를 보정해야 지구 위에 있는 시계와 똑같은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일상 생활과는 상관없을 듯한 상대성이론이 사실은 매우 가까이 있는 셈이다."

 

(출처: 동아 사이언스,

 http://www.dongascience.com/info/contents.asp?mode=view&article_no=20070313134115  )

 

 

 

영혼의 무게    

 

 

"영혼의 무게는 21g"… 귀신은 정말 있을까?

 

동서양 막론 끊임없는 귀신 탐구 … 氣·파동 등 이용한 과학적 접근 잇따라

 

해마다 여름이면 호사가의 단골소재로 등장하는 귀신. 최근엔 가수 MC몽, 연예인 신정환 등이 ‘귀신을 봤다’고 주장해 관심을 끌기도 했고, 쓰나미가 몰아쳐 폐허가 됐던 태국 푸껫 등지에선 ‘해변·리조트 등에 귀신이 떠돌고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많다는 내용의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귀신은 정말 있는 것일까?

 

▶▶▶동양의 귀신 탐구

 

용재총화(齋叢話), 추강냉화(秋江掠話), 용천담적기(龍泉談寂記), 어우야담(於于野譚) 등 우리 선조는 귀신에 관해 여러 문헌을 남겼다. 대표적인 것 중 하나가 조선전기의 학자 김시습(金時習·1435~1493)이 쓴 ‘금오신화(金鰲新話)’다. 이 글에서 김시습은 “산에 사는 요물을 소()라 하고, 물에 사는 괴물을 역()이라 하며, 계곡에 사는 괴물은 용망상(龍芒象)이라 하고, 나무와 돌에 사는 귀신을 기망량(夔)이라 한다”며 귀신의 종류를 밝혔다. 이어 “만물을 해치는 요물을 여()라 하고, 만물을 괴롭히는 요물은 마(魔)라 하며, 만물에 붙어사는 요물을 요(妖)라 하고, 만물을 유혹하는 요물은 매(魅)라 하는데, 이들을 모두 귀(鬼)라 한다”며 귀신을 분류했다. 그는 귀신의 특성에 대해 “산, 물, 계곡, 나무, 돌 등 곳곳에 존재하며 만물을 유혹하고 괴롭힐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 개념은 조선후기의 이익(李瀷·1681~1763)으로 이어진다. 이익은 저서 ‘성호사설(星湖僿說)’에서 “귀(鬼)는 지각을 가지고 있으니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고, 귀는 기(氣)이므로 어디든 들어가지 못하는 곳이 없다”며 “귀의 성질은 사람을 현혹시키기 때문에 생각지도 못한 곳에 나타나 사람을 깜짝 놀라게도 하고 속이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익은 “귀(鬼)는 음(陰)의 영(靈)이고 신(神)은 양(陽)의 영(靈)이며, 정령(精靈)은 백(魄)으로 되어 있고 신명(神明)은 혼(魂)으로 되어 있다”며 “먼저 정령이 있고 그 다음에 신명이 있으니, 이 두 가지 영(靈)이 물체를 떠났을 때 혼(魂)·백(魄) 또는 귀신(鬼神)이 된다”고 적었다. 그는 귀신의 특성에 대해 “영원히 존재하지 못하고 언젠가는 속멸된다”고 했다.

 

 

▲ 헨리 8세의 귀신? 영국왕 헨리 8세의 거주지였던 런던 남서부 햄튼궁에서 2003년 10월 폐쇄회로 TV에 유령처럼 보이는 정체불명의 모습이 찍혔다며 왕궁 측이 2003년 12월 19일 공개한 사진.

 

 

귀신에 관한 우리의 사상은 중국의 사상과도 상통한다. 귀신의 존재를 언급한 최초의 중국 문헌으로 알려진 것은 주나라 때 지어졌다는 유가(儒家) 최고의 경전 ‘상서(尙書=서경·書經)’다. 이 책은 죽은 사람을 ‘신(神)’이라 표현, ‘사람이 죽으면 신이 될 수 있다’는 개념이 당시 존재하고 있었음을 알려준다. 이후 법가(法家)의 기틀을 다진 제(齊)나라의 정치가 관자(管子·?∼BC 645)가 ‘내업(內業)’에서 “사람이 태어나는 것은 하늘이 정기(精氣)를 주고 땅이 지기(地氣)를 내줘 이뤄지는 것이니, 이 두 가지가 조화를 이루면 살고 조화를 이루지 못하면 살지 못한다(凡人之生也 天出其精 地出其形 合此以爲人 和湍生 不和不生)”라며 “사람이 생명을 다하겐 되면 신(神)은 하늘로 돌아가고 백(魄)은 땅으로 돌아간다”고 귀신의 성질을 기록했다.

 

이러한 귀신을 사람과의 관계에 초점을 맞춰 기술한 학자는 묵자(墨子·BC 480~BC 390)다. 그는 ‘명귀(明鬼)’라는 글에서 “선현이나 성왕들은 귀신을 공경하고 제사를 중시했다”며 귀신의 영명합(鬼神之明)에 주목했고, 도가(道家)의 기틀을 다진 장자(莊子·BC 369~BC 289?)는 “정(精)·기(氣)·신(神), 세 가지가 모여 인간의 몸을 이룬다”며 신(神)의 역할을 강조했다.

이후 송나라 때의 ‘태평광기(太平廣記)’, 청나라 때의 ‘요재지이(聊齋志異)’ 등은 귀신·요괴 등과 관련된 이야기를 집중적으로 채집·수록해 전했다. 이 문헌들은 모두 ‘사람이 죽고 나면 이후 귀신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언급하면서 귀신의 존재를 조망했다.

 

▶▶▶서양의 귀신 탐구

 

심령학계에선 1848년 3월 31일을 주목한다. ‘뉴욕 하이즈빌(Hydesville)에 살던 폭스(K. Fox)란 여성이 살해된 사람의 영혼과 교신하는 데 성공한 날’이란 것이다. 이를 계기로 심령학은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서양 여러나라로 퍼져갔고, 심령학자들은 이날을 근대 심령학이 탄생한 날로 기리고 있다.

이후 서양에선 영혼에 대한 과학적 접근이 이뤄지기 시작한다. 작업의 선두에 섰던 사람은 적자생존론을 주장했던 생태학자 알프레드 러셀 왈러스(Alfred Russel Wallace·1823~1913) 박사였다. 심령주의(spiritualism)에 관심을 가진 왈러스 박사는 ‘심령주의와 과학(Spiritualism and Science)’ ‘심령주의와 사회적 책무(Spiritualism and Social Duty)’ 등의 저술을 발표하면서 영(靈)에 대한 관심을 고취시켰다. ‘셜록 홈스’의 작가 코넌 도일(Doyle, Arthur Conan·1859~1930)도 대열에 합류했다. 말년에 심령학에 심취한 그는 세계심령학회 회장을 지내며 인세수입 상당액을 심령학 연구에 투자했다.

 

방사성 물질의 스펙트럼을 분석해 1861년 탈륨(thallium)을 발견하고 원자량을 측정했던 과학자 윌리엄 크룩스(William Crookes·1832~1919)경도 심령학에 심취한 학자다. 그는 공중부양(levitation)에 관심을 갖고 탐구, 연구결과를 학술 계간지 ‘과학 저널(Quarterly Journal of Science)’에 싣기도 했다.

이러한 분위기 덕으로 서양학계에선 “심령현상을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다”는 주장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같은 배경을 깔고 태어난 것이 영국 심령연구협회(The Society for Psychical Research; SPR)다.

 

 

▲ 영화 드라큘라의 한 장면.

 

1882년 케임브리지대학 학자 중심으로 런던서 창립된 이 협회는 미국학계에 영향을 끼쳤고, 그 결과 1885년 미국에서도 심령연구협회(American Society for Psychical Research; ASPR)가 발족된다. 하버드대학 교수 중심으로 뉴욕서 발족한 이 학회는 인간의식과 영혼의 문제를 파고들었다.

 

그 결과의 하나가 유명한 ‘영혼의 무게는 21g’이란 주장이다. 던컨 맥두걸( Duncan MacDougall·1866~1920) 박사가 1907년 과학저널(Scienti? Journal)에 발표해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이 실험은 ‘인간의 영혼 역시 하나의 물질’이란 가설에서 시작한다. 맥두걸 박사는 ‘사람이 죽은 뒤 정말로 영혼이 육체를 떠난다면, 물리적으로 그 실재(physical presence)를 측정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겠느냐’는 의문을 품었다. 박사는 이 의문을 풀기 위해 초정밀 저울을 이용해 임종 환자의 무게를 측정했다. 그 결과 사람이 숨을 거둘 때 반드시 체중이 줄어든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땀·속변 등의 수분과 폐에 들어있던 공기가 신체에서 빠져나가기 때문”이란 것이다. 박사가 주목한 것은 이 부분이었다. 6명의 환자 몸무게를 정밀 측정한 결과 “수분과 공기를 합한 무게보다 21g이 더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맥두걸 박사는 “이 21g이 바로 영혼의 무게”라고 주장했다. 그는 “숨진 환자의 몸에 인위적으로 숨을 불어넣어 봤지만 한번 줄어든 의문의 21g은 다시 회복되지 않았다”며 “떠나간 영혼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어떻게 이 현상을 설명할 수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그는 자신의 이론을 증명하기 위해 개 15마리를 대상으로 같은 실험을 했다. 하지만 “사람과 달리 개는 죽을 때 몸무겐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박사는 그 이유에 대해 “사람에겐 영혼이 있지만, 개에겐 영혼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연구는 그 해 3월 11일자 뉴욕타임스(The New York Times)와 미국 의약학회지(American Medicine) 4월호에 속개되면서 학계를 발칵 뒤집어놓았다. 하지만 “실험에 사용된 샘플 규모가 너무 작은 데다, 임종환자 몸무게 변화치의 신뢰도가 크지 않다”는 반론이 힘을 얻게 되면서 박사의 연구는 점차 잊혀져갔다. 하지만 이 연구결과는 2003년 ‘21그램’이란 제목의 영화로 제작돼 다시 한번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이후 서양의 심령학 연구는 체계를 갖춰 초능력을 탐구하는 초심리학(parapsychology)으로 발전했다. 1969년 세계 최대의 과학단체인 미국 과학진흥협회(AAAS; The American Association for the Advancement of Science)는 초심리학을 과학으로 인정, 미국 초심리학회(PA; Parapsychological Association)를 협회의 정식회원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이후 미국에선 초심리학회를 중심으로 정신감응(telepathy), 투시(clairvoyance), 염력(psychokinesis), 심령요법(psychic healing), 예지(precognition) 등에 관한 연구를 강화하고 있다.

 

 

▲ 영화 디 아이의 한 장면.

 

▶▶▶한국의 귀신 탐구

 

기(氣)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우리나라에서도 체계적인 방법을 통해 혼(魂)과 영(靈)의 문제에 접근해 보려는 움직임이 생겨나고 있다. 정신과학학회, 초능력학회 등 관련 학회들이 발족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과학적’이란 표현을 붙일 수 있을 정도로 실증적인 연구는 이뤄지지 못했다.

 

정신과학학회의 김종업 박사(기학·氣學)는 “영혼에 대한 서양의 탐구가 물질적이라면 동양의 탐구는 상대적으로 관념적이며 체험적이라는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김 박사는 “귀신과 영은 본질적으로 같은 것이라 본다”며 귀신에 대해 “형체는 없지만 의식을 가진 에너지”라고 말했다. 김 박사는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선 경험을 통해 영(靈)에 접근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으로 영의 존재를 밝히지는 못했다”고 말했다.

 

연세대학교 박민용 교수(전자공학)는 “서양에선 킬리언 사진과 같은 여러가지 장치를 고안해 영(靈)의 존재를 살펴보려는 시도가 있었다”며 “하지만 관측의 정확도에 의문이 있기 때문에 과학적으로 이를 입증하진 못했다”고 말했다. 킬리언 사진이란 세묜 킬리언(Semyon Kirlian)이란 러시아인이 1939년 고안한 방식으로 젤라틴에 할로겐화은을 섞어 만든 감광제를 이용해 전압이나 습도 온도 등을 화상에 나타내는 기술을 말한다. 일부에선 킬리언 사진을 이용하면 귀신을 촬영할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중앙대학교의 이종원 교수(기계공학)는 “개인적으로 영이 있다고 본다”면서 “하지만 증명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현대의학으로 봤을 때 육체적으로는 정상인데도 정신상태가 비정상적인 사람을, 속위 퇴마사(退魔徙)란 사람이 치료하는 경우가 있다”며 “이런 현상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의 김재수 박사(재료공학)는 “사람의 몸은 존재하는 파동대에 따라 감각을 느낄 수 있도록 세팅(setting)돼 있다”며 “따라서 세팅이 돼 있지 않은 파동은 느낄 수 없다”고 말했다. 김 박사는 “마찬가지로 전파가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없다고 할 수는 없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정신과학학회의 설영상 이사는 “나무가 불에 타서 없어질 경우 형체는 사라지지만 그 에너지는 그대로 존재한다는 사실은 오래 전 입증됐다”며 “귀신 역시 마찬가지로, 사람의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엄연히 존재하는 에너지”라고 말했다. 그는 “종교는 영(靈)의 존재를 인정하는 데서 출발한다”며 “영을 인정하지 않을 경우 종교는 어떻게 존재할 수 있겠느냐”고 되물었다."

 

이범진 주간조선 기자 bomb@chosun.com

 

입력 : 2005.08.13 15:27 53' / 수정 : 2005.08.13 15:57 48'

 

(출처 :  http://www.chosun.com/magazine/news/200508/200508130096.html   )

 

 

 

“던컨 맥두걸 (의사)

 

 

Duncan MacDougall (doctor)

 

 

던컨 맥두걸 박사(약<circa> 1866 - 1920년 10월 15일)는 매사츄세츠의 하버힐의 20 세기 초의 내과 의사이다. 그는 영혼이 육체를 떠날 임종 때에 인체가 잃은 질량을 측정한 사람이었다. 1907년, 맥두걸은 6명의 환자의 체중을 그들이 임종 과정에 있을 때(어떻게 환자들이 임종하게 되었는지 또는 얼마만한 간격으로 그 환자들의 몸무게가 측정되었는지 상세한 기록에 대한 정보가 없다) 측정했다. 그는 측정 결과들을(대부분의 6 환자의 경우에서 감지된 질량 손실의 변화하는 양) 영혼은 질량을 가지고 있고, 그리고 영혼이 육체를 떠날 때, 영혼의 질량도 떠난다는 그의 가정을 지지하기 위하여 받아들였다.

 

 

Dr. Duncan MacDougall (c. 1866 – 15 October 1920) was an early 20th century physician in Haverhill, Massachusetts who sought to measure the mass purportedly lost by a human body when the soul departed the body upon death.

In 1907, MacDougall weighed six patients while they were in the process of dying (no detail is given to how this occurred or at what intervals the patients were weighed). He took his results (a varying amount of perceived mass loss in most of the six cases) to support his hypothesis that the soul had mass, and when the soul departed the body, so did this mass.

 

 

맥두걸은 또한 비슷한 상황에서 15마리의 개를 측정했다 그리고 그 결과들을 질량의 감지된 변화가 없는 것으로 한결 같이 부정적으로 발표했다. 그는 이 결과들을 영혼은 무게를 가지고 있고 그리고 개들은 영혼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긍정으로서 받아들였다. 이상적인 경우인 자연적인 원인으로 죽어가는 개들을 발견할 수 없었다는 맥두걸의 불평은 최소한 한사람의 작가가 그가 사실은 이 실험을 행하기 위하여 개들에게 독약을 투여했다는 것을 추측하게 하였다.

 

 

MacDougall also measured fifteen dogs in similar circumstances and reported the results as "uniformly negative," with no perceived change in mass. He took these results as confirmation that the soul had weight, and that dogs did not have souls. MacDougall's complaints about not being able to find dogs dying of the natural causes that would have been ideal have led at least one author to conjecture that he was in fact poisoning dogs to conduct these experiments.

 

 

1907년, 맥두걸의 실험에 대한 기사가 뉴욕 타임즈와 미국 의학 협회지에 발표가 되었다. 비록 일반적으로 의미없는 것으로 또는 과학적 가치가 거의 없는 것으로 간주되었지만, 인간 영혼이 21g 이라는 맥두걸의 발견은 대중의 의식 속에 문화 구성 요소가 되었다. 인간 영혼이 21g 이라는 맥두걸의 발견은 영화 21g의 제목에 꼭 맞는다.

 

 

In March 1907, accounts of MacDougall's experiments were published in the New York Times and the medical journal American Medicine.

Although generally regarded either as meaningless or considered to have had little if any scientific merit, MacDougall's finding that the human soul weighed 21 grams has become a meme in the public consciousness. It lent itself to the title of the film 21 Grams.“

 

 

(출처: Fro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뉴욕 타임스의 기사

 

 

 

 

 

 

“영혼은 무게를 가지고 있다, 라고 의사가 생각한다. 하버힐의 맥두걸 박사가 임종 때의 실험을 말한다. 육체의 질량 손실이 기록되었다.

체중계가 한 경우에 1온스가 없어진 것을 보여 주었다, 그는 말한다 - 4명의 다른 의사들이 같이 있었다. 뉴욕 타임스의 특파원

 

 

보스톤, 3월 10일- 육체로부터 빠져나올 때 결정되어질 수 있는 명확한 무게를 인간의 영혼이 가지고 있다는 것이 하버힐의 이름난 의사인 던칸 맥두걸 박사의 믿음이다. 그는 이 분야에 대하여 6년 동안 실험하고 있는 연구 협회의 회장이다. 그와 더불어 다른 4명의 의사들이 참가하고 있다고 그는 말한다.“

 

(출처: Fro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http://en.wikipedia.org/wiki/File:Nytimage001.jpg   )

 

 

 

 

 

 

“미국 의학 협회지

1907년 4월

 

 

American Medicine

April, 1907

 

 

영혼 물질의 존재의 실험적 증거와 더불어 영혼 물질에 대한 가설

매사추세츠, 하버힐의 던칸 맥두걸 의학 박사

 

 

Hypothesis Concerning Soul Substance Together with Experimental Evidence of The Existence of Such Substance

by Duncan MacDougall, M.D.of Haverhill, Mass.

 

 

만약 신체적 죽음의 사건 후에 개인의 연속이 사실이라면, 만약 심리적 기능이 뇌와 육체의 죽음 후에도 개인적으로 독립체로 또는 인격체로 존재하기를 계속한다면, 그러면 그런 인격체는 오직 공간을 점유하는 물체로서 존재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유전과 경험에 의하여 우리의 의식 속에 확립된, 우리의 의식 속에 있는 공간 실체와 공간 개념과의 관계가 완전히 임종 때에 씼겨 나간다 그리고 공간과 의식 사이에서 새로운 관계의 집합들이 갑자기 연속적인 인격내에서 생겨난다. 이것은 자연의 연속성에서는 상상하지 못하는 위반이다.

 

 

If personal continuity after the event of bodily death is a fact, if the psychic functions continue to exist as a separate individually or personality after the death of brain and body, then such personality can only exit as a space occupying body, unless the relations between space objective and space notions in our consciousness, established in our consciousness by heredity and experience, are entirely wiped out at death and a new set of relations between space and consciousness suddenly established in the continuing personality. This would be an unimaginable breach in the continuity of nature.

 

 

개인의 주체성을 계속하는 인격과 의식이 존재해야 하고, 그리고 존재하기를 계속해 왔었고, 그리고 아직까지 공간을 차지하고 있지 않다고 하는 것은 생각할 수 없다. 인격을 가진 것 같이 공간을 차지하고 있지 않은 것을 생각 속에서 묘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공간 자체가 공간보다 더한 무엇이 있다라던가, 무가 유가 되었거나 무가 유였다라고 생각하는 것과 같은, 모든 것은 모순이고 터무니없는 것과 같은 것이다.

 

 

It is unthinkable that personality and consciousness continuing personal identity should exist, and have being, and yet not occupy space. It is impossible to represent in thought that which is not space-occupying, as having personality; for that would be equivalent to thinking that nothing had become or was something, that emptiness had personality, that space itself was more than space, all of which are contradictions and absurd.

 

 

그러므로 의문을 일으키는 공간을 점유하는 것, 또는 물질은 기본으로 무게를 가져야만 한다는 것이 죽음 뒤에 의식의 삶과 개인의 주체성의 연속성에 필요하다. 일고의 가치가 있는가?

기본적인 것은 개인의 주체성과 의식을 계속하는 기반으로 어떤 물질이 존재해야 한다고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육체적 죽음 뒤에 공간을 점유하는 것 없는 물질, 주체성 또는 계속되는 의식의 자아는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Since therefore it is necessary to the continuance of conscious life and personal identity after death, that they must have for a basis that which is space-occupying, or substance, the question arises has this substance weight, is it ponderable?

The essential thing is that there must be a substance as the basis of continuing personal identity and consciousness, for without space-occupying substance, personality or a continuing conscious ego after bodily death is unthinkable.

 

 

최근의 과학의 개념에 따르면 물질, 또는 공간을 점유하는 재료는 중력의 작용을 받는 것으로, 모두 무게를 가지는 것으로, 고체, 액체, 가스, 그리고 중력의 작용을 받지 않는 것으로 에테르로 나눌 수 있다. 영혼의 물질이 에테르로 구성되어있다는 것은 나에게 불가능하게 보였다. 만약 그 개념이 에테르가 연속이고 그리고 독립된 질량 내에서 존재하는 것으로 또는 존재할 수 있는 것으로 이해되어지지 않는다는 것이 사실이면, 우리는 우리가 찾고 있는 영혼의 물질은 에테르가 아니다 라는 믿는 것에 대한 여기서 가장 확고한 입지를 가지는 것이다, 왜냐하면 개인의 주체성의 첫 번째 속성 중의 하나가 분리의 질이기 때문이다. 자아가 제거되고 그리고 모든 것으로부터-비자아로부터 분리된 것 보다 어떤 것도 의식에 더 확신을 주지 못한다.

 

 

According to the latest conception of science, substance, or space-occupying material, is divisible into that which is gravitative, solids, liquids, gases, all having weight, and the ether which is nongravitative. It seemed impossible to me that the soul substance could consist of the ether. If the conception is true that ether is continuous and not to be conceived of as existing or capable of existing in separate masses, we have here the most solid ground for believing that the soul substance we are seeking is not ether, because one of the very first attributes of personal identity is the quality of separateness. Nothing is more borne in upon consciousness, than that the ego is detached and separate from all things else - the nonego.

 

 

우리는 그러므로 이 물질도 된 육체의 죽음 뒤에 개인의 주체성을 계속하려는 개념으로 필요한 영혼의 물질이 여전히 중력의 작용을 받는 물질의 형태이어야만 한다, 또는 무게를 달 수 없고, 그리고 에테르와 동일하지 않은, 아마도 중력의 작용을 받는 물질과 에테르의 중간 형태이어야만 한다는 가정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우리의 가정에 고려된 그 물질은 죽음이 발생하기까지 육체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있기 때문에, 중력의 작용을 받는 물질이라고, 그리고 죽음의 과정 중에 있는 인간의 무게를 측정함으로서 그것을 발견할 수 있으리라 라고 생각하는 것이 나에게는 더 합리적이게 보인다.

 

 

We are therefore driven back upon the assumption that the soul substance so necessary to the conception of continuing personal identity, after the death of this material body, must still be a form of gravitative matter, or perhaps a middle form of substance neither gravitative matter or ether, not capable of being weighed, and yet not identical with ether. Since however the substance considered in our hypothesis is linked organically with the body until death takes place, it appears to me more reasonable to think that it must be some form of gravitative matter, and therefore capable of being detected at death by weighing a human being in the act of death.

 

 

나의 첫 번째 주제는 결핵으로 죽어가는 남자였다. 근육의 움직임이 거의 없거나 없으면서 죽음이 일어나는, 엄청난 에너지를 고갈시키는 병으로 죽어가는 환자를 선택하는 것이 나에게는 최고로 보였다, 왜냐하면 이런 경우에는 저울대가 평형 상태를 유지할 수 있고 그리고 어떤 무게 손실도 쉽게 알아차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 환자는 아주 미묘하게 균형이 잡힌 고대(高臺) 저울대 눈금 위에 만들어진 가벼운 구조물 위에 마련된 침대 위에 놓여 있으면서 죽기 전 3시간 40분 동안 관찰 하에 있었다.

 

 

My first subject was a man dying of tuberculosis. It seemed to me best to select a patient dying with a disease that produces great exhaustion, the death occurring with little or no muscular movement, because in such a case the beam could be kept more perfectly at balance and any loss occurring readily noted.

The patient was under observation for three hours and forty minutes before death, lying on a bed arranged on a light framework built upon very delicately balanced platform beam scales.

 

 

그 환자의 편안함은 비록 그가 침대위에 위치할 때 실제적으로 죽어가고 있었지만, 여러 가지 방법으로 관심이 가져졌다. 그는 호흡으로 인한 습기의 증발과 땀의 증발로 인하여 한 시간에 1온스(28.35g)씩의 비율로 천천히 체중을 잃었다.

모든 3시간 40분 동안 나는 그 시험을 가능하면 더 결정적으로 만들기 위하여 상부 제한선 막대 가까이 저울대 끝을 약간 균형 위로 되게 유지하였다.

 

 

The patient's comfort was looked after in every way, although he was practically moribund when placed upon the bed. He lost weight slowly at the rate of one ounce per hour due to evaporation of moisture in respiration and evaporation of sweat.

During all three hours and forty minutes I kept the beam end slightly above balance near the upper limiting bar in order to make the test more decisive if it should come.

 

 

3시간 40분 끝부분에 그는 죽었다 그리고 갑자기 죽음과 동시에 저울대 끝이 충격을 주면서 떨어지면서 낮은 제한선 막대를 때리면서 아무런 반동없이 그 곳에 머물러 있었다. 무게의 감소는 3/4 온스(21.26g)로 확인되었다.

이 체중의 감소는 호흡을 통한 습기와 땀으로 인한 증발에 기인한 것이 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이 몇 초 사이에 3/4 온스의 감소는 갑작스러웠고 그리고 컸는 데 반하여, 그의 경우에 있어서 1분에 1/6 온스(4.73g) 씩의 비율로 계속 감소되게 결정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At the end of three hours and forty minutes he expired and suddenly coincident with death the beam end dropped with an audible stroke hitting against the lower limiting bar and remaining there with no rebound. The loss was ascertained to be three-fourths of an ounce.

This loss of weight could not be due to evaporation of respiratory moisture and sweat, because that had already been determined to go on, in his case, at the rate of one sixtieth of an ounce per minute, whereas this loss was sudden and large, three-fourths of an ounce in a few seconds.

 

 

내장은 움직이지 않았다; 만약 내장이 움직였다면 물론 배설물의 유동성에 달려있는 습기의 증발에 의한 느린 무게 감소를 제외하고 체중은 여전히 침대위에 머물러 있었을 것이다. 방광은 오줌 약간량을 비웠다. 이것은 침대위에 남아있었다 그리고 느린 점진적인 증발에 의해 오직 무게에 영향을 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그럼으로 어떤 방식으로던 갑작스런 체중 감소를 설명할 수 없었다.

 

 

The bowels did not move; if they had moved the weight would still have remained upon the bed except for a slow loss by the evaporation of moisture depending, of course, upon the fluidity of the feces. The bladder evacuated one or two drams of urine. This remained upon the bed and could only have influenced the weight by slow gradual evaporation and therefore in no way could account for the sudden loss.

 

 

거기에는 탐구할 하나의 체중 감소의 통로를 남아있다, 폐속에 남아있는 잔류 공기 이외에 모든 숨을 내쉬기. 나 스스로 침대위에 올라가서, 나의 동료가 저울대를 실제적인 균형 상태로 놓았다. 나에 의한 가능한 강제적인 숨 들이쉬기와 숨 내쉬기는 저울대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나의 동료가 침대로 올라갔고 그리고 내가 저울대를 균형 상태로 놓았다. 그의 강제적인 공기 들이쉬기와 내쉬기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이 경우 우리는 확실히 설명하지 못하는 3/4 온스의 체중 감소를 가진다. 이것이 영혼의 무게인가? 우리는 어떻게 다르게 그것을 설명할 것인가?

 

 

There remained but one more channel of loss to explore, the expiration of all but the residual air in the lungs. Getting upon the bed myself, my colleague put the beam at actual balance. Inspiration and expiration of air as forcibly as possible by me had no effect upon the beam. My colleague got upon the bed and I placed the beam at balance. Forcible inspiration and expiration of air on his part had no effect. In this case we certainly have an inexplicable loss of weight of three-fourths of an ounce. Is it the soul substance? How other shall we explain it?

 

 

나의 2번째 환자는 결핵으로 죽어가는 남자였다. 그는 죽기 전에 약 4시간 15분 침대위에서 관찰 하에 있었다. 처음 4시간은 그는 한 시간에 3/4 온스의 비율로 체중을 잃었다. 그는 처음 경우보다 많이 늦게 호흡을 했고, 그것은 땀과 호흡에 의한 증발로 인한 체중 감소의 차이 때문이라고 설명이 된다.

 

 

My second patient was a man moribund from tuberculosis. He was on the bed about four hours and fifteen minutes under observation before death. The first four hours he lost weight at the rate of three-fourths of an ounce per hour. He had much slower respiration than the first case, which accounted for the difference in loss of weight from evaporation of perspiration and respiratory moisture.

 

 

마지막 15분 동안 그는 숨을 멈추었으나 그의 얼굴 근육은 격렬히 움직였고, 그리고 나서 얼굴 근육의 마지막 움직임과 동시에 저울대가 떨어졌다. 체중 감소는 1/2 온스(14.175g)로 나타났다. 그 후에 나의 동료는 심장을 청진하였고 그리고 멈춘 것을 발견했다. 나는 다시 시도했다 그리고 체중 감소는 1.5 온스 50 그레인이었다. 우리가 죽음을 확신하기까지 그가 숨쉬기를 멈춘 그 시간 사이 흘러간 18분 내에 4시간이라는 시간 동안 보통의 체중 감소 경로라면 나타날 3 온스 체중 감소와 비교해 보았을 때, 체중 감소가 1.5 온스 50그레인이 있었다. 아무런 내장 운동이 일어나지 않았다.

 

 

The last fifteen minutes he had ceased to breathe but his facial muscles still moved convulsively, and then, coinciding with the last movement of the facial muscles, the beam dropped. The weight lost was found to be half an ounce. Then my colleague auscultated the heart and found it stopped. I tried again and the loss was one ounce and a half and fifty grains. In the eighteen minutes that lapsed between the time he ceased breathing until we were certain of death, there was a weight loss of one and a half ounces and fifty grains compared with a loss of three ounces during a period of four hours, during which time the ordinary channels of loss were at work. No bowel movement took place.

 

 

방광은 움직였지만 오줌은 침대위에 남아있었고 그리고 결과에 영향을 주었을 만큼 두꺼운 침대보를 통하여 충분히 증발할 수 없었다.

의심의 18분의 끝에 저울대는 끝부분이 상부 막대와 약간 접촉하면서 다시 자리에 놓여 있었다 그리고 40분 동안 지켜보았다, 그러나 더 이상 체중 감소가 발생하지 않았다.

나의 저울은 1 온스의 2/10(5.67g) 만큼 예민하였다. 만약 균형 상태에 놓여 있었다면 1/10 온스는 저울대를 상부 제한선 막대 가까이 까지 들어 올려졌을 것이다. 다른 1/10 온스는 저울대를 들어 올렸을 것이고 상부 제한선 막대를 계속 접촉하게 했을 것이다. 그 때 2/10 온스가 저울대에서 제거되면 저울대는 하부 제한선 막대까지 떨어질 것이고 그리고 천천히 균형을 잡을 때까지 진동하였을 것이다. 이 환자는 처음부터 완전히 다른 성격이었다, 그의 죽음은 아주 점진적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 그가 죽었는 지를 말하기 위한 보통의 증거로부터 큰 의혹을 가졌다.

 

 

The bladder moved but the urine remained upon the bed and could not have evaporated enough through the thick bed clothing to have influenced the result.

The beam at the end of eighteen minutes of doubt was placed again with the end in slight contact with the upper bar and watched for forty minutes but no further loss took place.

My scales were sensitive to two-tenths of an ounce. If placed at balance one-tenth of an ounce would lift the beam up close to the upper limiting bar, another one-tenth ounce would bring it up and keep it in direct contact, then if the two-tenths were removed the beam would drop to the lower bar and then slowly oscillate till balance was reached again.

This patient was of a totally different temperament from the first, his death was very gradual, so that we had great doubts from the ordinary evidence to say just what moment he died.

 

 

나의 3 번째 경우는 결핵으로 죽어가는 남자로서 1.5 온스의 체중을 잃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죽음과 동시에, 몇 분 뒤에 부가적인 1 온스의 체중 감소와 같이.

4 번째 경우, 당뇨병 혼수 상태로 죽어가는 여자로 불행히도 우리의 저울은 정밀하게 조정되어지지 않았고 그리고 우리의 일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많은 방해가 있었다, 그래서 전의 임종할 때의 점까지 되돌기 위해서 3/8 - 1/2 온스 정도 임종 시 저울대가 내려갔지만, 나는 이 테스트를 무가치한 것으로 여겼다.

 

 

My third case, a man dying of tuberculosis, showed a weight of half and ounce lost, coincident with death, and an additional loss of one ounce a few minutes later.

In the fourth case, a woman dying of diabetic coma, unfortunately our scales were not finely adjusted and there was a good deal of interference by people opposed to our work, and although at death the beam sunk so that it required from three-eighths to one-half ounce to bring it back to the point preceding death, yet I regard this test as of no value.

 

 

나의 5 번째 경우, 결핵으로 죽어가는 남자였는 데, 설명할 수 없는 3/4 온스의 저울대의 명확한 떨어짐을 보여 주었다. 이것은 죽음과 더불어 정확히 동시에 발생했다. 그러나 특별히 분동과 같이 저울대를 위로 올린 후에 분동을 제거할 때, 저울대는 완전히 15분 동안 멈추기 위하여 반대 방향으로 내려오지 않았다. 3/8 온스의 떨어짐은 설명하기가 불가능했다, 첫 번째 경우처럼 큰 소리와 함께 저울대가 낮은 막대를 때림은 갑자기였고 명확했다. 이 경우 우리의 저울은 아주 예민하게 균형을 잡고 있었다.

 

 

My fifth case, a man dying of tuberculosis, showed a distinct drop in the beam requiring about three-eighths of an ounce which could not be accounted for. This occurred exactly simultaneously with death but peculiarly on bringing the beam up again with weights and later removing them, the beam did not sink back to stay for fully fifteen minutes. It was impossible to account for the three-eighths of an ounce drop, it was so sudden and distinct, the beam hitting the lower bar with as great a noise as in the first case. Our scales in the case were very sensitively balanced.

 

 

나의 여섯 번째 그리고 마지막 경우는 공정한 테스트가 아니었다. 그 환자는 침대에 위치한 후 거의 5분 내에 죽었다, 나는 저울대를 맞추고 있는 동안에 죽었다.

호드그선 박사와의 대화에서 나는 아무런 체중감소가 없었다고 말했던 것을 기억한다. 우리가 기록을 남길 만큼 확언하는 체중 감소가 없었다고 덧붙여야만 했다.

 

 

My sixth and last case was not a fair test. The patient died almost within five minutes after being placed upon the bed and died while I was adjusting the beam.

In my communication to Dr. Hodgson I note that I have said there was no loss of weight. It should have been added that there was no loss of weight that we were justified in recording.

 

 

실험을 할 때의 나의 기록은 1.5 온스의 체중 감소를 보여 주었다. 그러나 부가하여 그 실험은 너무나 서둘러 행해졌고, 저울의 진동이 완전히 멈추지 않았고, 그리고 1.5 온스의 명백한 체중 감소는 저울대에서 미끌어지는 무게의 우발적인 이동에 기인할 지도 모른다 라고 말해져 왔다.이것은 다른 테스트에서 사실일 수가 없다; 어느 누구 한사람도 성급히 하지 않았다. 나의 6번째 경우 나는 이 원인으로부터 무가치한 것의 하나로 여겼다.

 

 

My notes taken at the time of experiment show a loss of one and one-half ounces but in addition it should have been said the experiment was so hurried, jarring of the scales had not wholly ceased and the apparent weight loss, one and one-half ounces, might have been due to accidental shifting of the sliding weight on that beam. This could not have been true of the other tests; no one of them was done hurriedly. My sixth case I regard as one of no value from this cause.

 

 

같은 실험이 정확도를 얻기 위한 사전 주의 사항을 유념하고 15마리의 개에게 시행 되어졌다, 그리고 결과는 한결 같이 임종 때에 체중의 감소가 없이 부정적이었다.

보통은 통변한 오줌의 증발에 기인한 체중의 감소는 임종 후 약 20-30분 후에 발생한다, 그리고 체중의 감소는 저울에 같은 양의 물의 증발에 의하여 되풀이 되어지고, 개의 육체의 존재를 제외하고는 모든 다른 조건은, 예를 들면 방의 온도는 같았다.

 

 

The same experiments were carried out on fifteen dogs, surrounded by every precaution to obtain accuracy and the results were uniformly negative, no loss of weight at death.

A loss of weight takes places about 20 to 30 minutes after death which is due to the evaporation of the urine normally passed, and which is duplicated by evaporation of the same amount of water on the scales, every other condition being the same, e.g., temperature of the room, except the presence of the dog's body.

 

 

실험한 개들은 15-70 파운드의 체중을 가지고 있었고 그리고 저울에 총 중량을 가했을 때 1 온스의 1/16 온스의 예민도를 나타내었다. 개에게 행한 실험은 2가지 약물을 사용함으로 필요한 조용함을 그리고 저울대를 균형 잡히게 유지하기 위하여 필요한 버둥거림으로부터 자유를 확보하기 위하여 복용시킨 2가지 약물을 사용함으로 손상되었다. 개에 대한 이상적인 테스트는 엄청난 에너지를 고갈시키는 어떤 병에 걸려서 버둥거릴 수 없는 죽어가는 개를 확보하는 것이었다. 그러한 병으로 죽어가는 개들를 확보하는 것이 나의 행운이 아니었다.

 

 

The dogs experimented on weighed between 15 and 70 pounds and the scales with the total weight upon them were sensitive to one-sixteenth of an ounce. The tests on dogs were vitiated by the use of two drugs administered to secure the necessary quiet and freedom from struggle so necessary to keep the beam at balance.

The ideal tests on dogs would be obtained in those dying from some disease that rendered them much exhausted and incapable of struggle. It was not my fortune to get dogs dying from such sickness.

 

 

인간에게 수행된 최종적 실험 결과는 물질의 감소가 알려진 감소의 통로들에 의하여 설명되지 못하는 임종 때 일어난다. 그것이 영혼의 물질인가? 나에게는 그런 것처럼 보인다. 우리의 가정에 따르면 그런 물질은 육체적인 죽음 뒤에도 인격체를 지속하고 그리고 존속한다는 가설에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무게를 측정할 수 있는 어떤 물질이 임종 때에 육체를 떠난다는 것을 여기서 실험적으로 보여준다.

 

 

The net result of the experiments conducted on human beings, is that a loss of substance occurs at death not accounted for by known channels of loss. Is it the soul substance? It would seem to me to be so. According to our hypothesis such a substance is necessary to the assumption of continuing or persisting personality after bodily death, and here we have experimental demonstration that a substance capable of being weighed does leave the human body at death.

 

 

만약 이 물질이 육체의 대응물이라면, 동일한 체적을 가지고, 공간에서 동일한 차원을 차지하고 있다면, 그러면 그것은 세제곱 피트 당 약 1과 1/4 온스인 지구를 둘러싸고 있는 대기보다 아주 가벼운 물질일 것이다. 그런 체는 즉시 우리의 대기 속으로 상승하기 때문에,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요소이다. 임종 때에 육체를 떠나는 무게가 나가는 질량의 부재는 물론 연속하는 인격체에 대한 논의가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공간을 점유하고 있는 체나 물질은 에테르 같이 무게를 달 수 없는 상태로 존재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If this substance is a counterpart to the physical body, has the same bulk, occupies the same dimensions in space, then it is a very much lighter substance than the atmosphere surrounding our earth which weighs about one and one-fourth ounces per cubic foot. This would be a fact of great significance, as such a body would readily ascend in our atmosphere. The absence of a weighable mass leaving the body at death would of course be no argument against continuing personality, for a space-occupying body or substance might exist not capable of being weighed, such as the ether.

 

 

에테르가 그 물질일지도 모른다고 제안되어 왔다, 그러나 에테르는 모든 물질의 근원적인 형태라는, 모든 다른 물질의 형태는 단지 가변적인 밀도를 가진 에테르의 변형들이라는 과학의 현대적인 개념과 더불어, 유기적으로 이번 생에서 육체와 연결된 영혼의 물질은 에테르와 동일할 수 없는 것이라고 나에게는 생각된다. 지속하는 인격체 또는 개체성을 위한 하나의 가장 중요한 필요 조건은 분리성의 질, 모든 사물로부터 독립적이고 명확한 자아, 비자아 임에 반하여, 더욱이, 에테르는 비불연속, 연속적인 전체일 것으로 상상되고 그리고 에테르로서 독립된 질량 내에 존재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상상된다.

 

 

It has been suggested that the ether might be that substance, but with the modern conception of science that the ether is the primary form of all substance, that all other forms of matter are merely differentiations of the ether having varying densities, then it seems to me that soul substance which is in this life linked organically with the body, cannot be identical with the ether. Moreover, the ether is supposed to be nondiscontinuous, a continuous whole and not capable of existing in separate masses as ether, whereas the one prime requisite for a continuing personality or individuality is the quality of separateness, the ego as separate and distinct from all things else, the nonego.

 

 

그러므로 내 생각에는 영혼의 물질은 에테르와 같은 에테르가 될 수 없다; 그러나 만약 에테르가 모든 물질의 근원적인 형태라는 이론이 진실이면, 그러면 영혼의 물질은 에테르와는 필연적으로 다른 형태이어야만 한다.

만약 인간에게 있어서 임종 때 체중 감소의 알려진 통로에 의해 설명되어지지 못하는 물질의 감소가 분명히 존재하고, 그리고 나의 실험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개에게는 그러한 물질의 감소가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이 밝혀지면, 그러면 우리는 여기서 최소한 인간과 개 사이에 그리고 아마도 인간과 모든 다른 형태의 동물 사이에 어떤 생리학적인 차이를 가지게 된다.

 

 

To my mind therefore the soul substance cannot be the ether as ether; but if the theory that ether is the primary form of all substance is true, then the soul substance must necessarily be a differentiated form of it.

If it is definitely proved that there is in the human being a loss of substance at death not accounted for by known channels of loss, and that such loss of substance does not occur in the dog as my experiments would seem to show, then we have here a physiological difference between the human and the canine at least and probably between the human and all other forms of animal life.

 

 

나는 이 문제가 어떤 오류의 가능성을 넘어 증명되어질 수 있기 전에 대단히 많은 실험들이 행하여져야 할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만약 더 나아간 그리고 충분한 실험이 임종 때에 발생하는 그리고 체중 감소의 알려진 통로에 의해 설명되어지지 않는 물질의 감소가 있다고 증명한다면, 그러한 진실의 확인은 지고로 중요할 수 밖에 없다.

신학자와 형이상학자 모두를 포함한 모든 쓸데없이 따지는 이론들 보다, 1 온스보다 많거나 적은 진실의 1 온스는 기초를 두고 있는 물질의 필요한 근거와 더불어 지속적인 존재의 실재의 진실을 보여주는 데 더한 무게를 가질 것이다.

 

 

I am aware that a large number of experiments would require to be made before the matter can be proved beyond any possibility of error, but if further and sufficient experimentation proves that there is a loss of substance occurring at death and not accounted for by known channels of loss, the establishment of such a truth cannot fail to be of the utmost importance.

One ounce of fact more or less will have more weight in demonstrating the truth of the reality of continued existences with the necessary basis of substance to rest upon, than all the hair-splitting theories of theologians and metaphysicians combined.

 

 

만약 다른 실험들이 임종 때에 체중 감소의 알려진 통로에 의해 설명되어지지 않는 무게의 감소가 있다는 것을 밝히면, 우리는 그것이 가설적인 영혼의 물질이라는 이론이라고 받아들여야만 한다, 또는 그 현상의 좀 더 다른 설명을 기꺼이 도와주어야 한다는 것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만약 진실이라고 증명되면, 물질적인 개념은 완전히 충족되어질 것이고, 그리고 물질주의자들에 의해 필요한 것으로 주장 되어진, 육체의 임종 후에도 지속되는 마음 또는 정신 또는 영혼을 위한 물질적인 근거의 증명도 제공되어 질 것이다.

 

 

If other experiments prove that there is a loss of weight occurring at death, not accounted for by known channels of loss, we must either admit the theory that it is the hypothetical soul substance, or some other explanation of the phenomenon should be forthcoming. If proved true, the materialistic conception will have been fully met, and proof of the substantial basis for mind or spirit or soul continuing after the death of the body, insisted upon as necessary by the materialists, will have been furnished.

 

 

영혼 불멸의 심령주의자들의 개념이 틀렸다는 것이 증명될 것이다. 종교적인 교의(敎義)의 가정들도 의문의 하나의 긍정적이고 그리고 마지막 해결책이 되지는 않아 왔었다.

모든 철학자들과 모든 철학들의 이론들은 육체적 죽음 뒤에 계속되는 인격체의 문제의 마지막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한다.

만약 증명된다면, 측정 가능한 공간을 점유하는 육체의 무게가 임종 때에 사라진다는 이 사실이 지속하는 인격체 또는 육체의 죽음 행위에서 살아남는 의식의 자아를 위한 중요한 근거를 주게 되고, 그리고 확실성의 요소에서는 모든 교의의 가정들과 모든 형이상학적인 논의를 합친 것 보다 더 값어치가 있다.

 

 

It will prove also that the spiritualistic conception of the immateriality of the soul was wrong. The postulates of religious creeds have not been a positive and final settlement of the question.

The theories of all the philosophers and all the philosophies offer no final solution of the problem of continued personality after bodily death. This fact alone of a space occupying body of measurable weight disappearing at death, if verified, furnishes the substantial basis for persisting personality or a conscious ego surviving the act of bodily death, and in the element of certainty is worth more than the postulates of all the creeds and all the metaphysical arguments combined."  

Copyrighted 1997 by Dave Oester

 

 

(출처:   http://www.ghostweb.com/soul.html   )

 

 

 

일본 가와다(川田薰) 교수의 쥐의 영혼 무게 측정 실험

 

“유체이탈을 경험한 사람들의 이야기에 의하면 영혼은 각종 심령사진에서 본 것처럼 구체적인 형태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본인이 원하는 곳으로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다고 합니다. 그것도 아주 빠른 속도로 공간이동을 할 수 있다고 합니다. 영혼에 대한 인간의 호기심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얼마 전 일본에서는 재미있는 실험을 했습니다. 바로 영혼의 무게를 측정하는 실험입니다. 동물도 영혼이 있다는 전제하에 쥐가 살아있을 때와 사후의 무게를 비교했는데, 140 초에 70 마이크로그램(1 μg=10⁻⁶ g=100만분의 1 g)이 떨어지고, 다시 130 초가 지나자 100 마이크로그램이 더 줄어들었습니다.

 

이 실험을 주관한 가와다 교수는 이것이 바로 쥐의 영혼의 무게라고 주장했습니다. 이렇게 인간은 영혼의 세계를 규명해 보려 노력해 왔습니다. 물론 지금까지 알아본 것 만으로 영혼의 세계를 모두 살펴본 것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영혼의 세계가 존재한다면 그것은 분명 현실 세계와는 아주 다른 모습이 아닐까요?“

 

(출처: NAVER 비디오  http://video.naver.com/2008071021055991120    ) 

 

 

 

물질의 기원 

 

 

“우주 창조의 시간에 수소와 헬륨이 만들어 졌지만 나머지 무거운 원소들은 어떻게 만들어 졌을까? 이 문제에 대한 완벽한 대답을 해낸 사람은 정상 우주론자인 호일 이었다. 정상우주론에서 이 문제의 해결은 중요한 과제 였다.

각 원소들이 핵 융합을 하여 다른 원소로 태어나기 위하여는 각각 서로 다른 온도를 필요로 했다. 수소가 헬륨으로 변하려면 4천만도가, 네온이 합성되기 의하여는 30억도가, 실리콘이 형성 되려면 130억도가 필요하다.

 

호일은 이 무거운 원소들이 죽어가는 별들에서 생성되는 과정을 설명 했다.

중력과 외부로 향하는 압력이 평형을 이루고 있는 별에서 수소 연로의 감소로 별의 온도가 식어가면 바깥 쪽으로 향하는 압력이 줄어들고 중력의 힘이 커질 것이다. 이 중력의 힘은 별을 수축하게 할 것이고 이 내부로 향한 붕괴 때문에 별의 내부 온도는 올라가고 별은 수축을 잠시 중단하게 된다. 이런 과정을 여러 번 계속 함에 따라 여러 온도의 상황이 설정되고 그 때마다 각각의 원소가 형성된다. 끝내는 이 별이 붕괴되어 이별의 잔해들이 우주를 떠 다니다가 새로운 별을 형성함으로 무거운 원소를 지닌 별이 탄생하는 것이다.

 

별들이 죽어 새로운 제 2세대 별을 형성하여 그 별의 구성 원소는 무거워지고 다시 그 과정을 반복함으로 제 3세대 별이 생성한다. 태양계는 제 3세대 별에 속한다.

 

호일은 헬륨이 융합하여 탄소가 되는 과정을 순전히 이론으로 정립하고 버클리에 있는 캘리포니아 공대의 윌리암 파울러 교수로 하여금 이를 증명하게 한다. 파울러 교수는 이를 증명하고 1983년 노벨 물리학 상을 받는다. 이로서 무거운 원소들의 생성 과정의 비밀도 밝혀졌다.

 

빅뱅을 다시 간단히 요약하면 모든 질량과 에너지가 한 점에 집중되어 있었고 그 다음에 빅뱅이 있었다. 빅뱅은 공간에서의 폭발이 아니고 공간의 폭발로 시간과 공간이 빅뱅의 순간에 창조 된 것이다. 최초 수 분 안에 수소와 헬륨이 형성 되었고 우주는 팽창을 계속 하여 식으면서 대략 30만년이 지나 여러 원자를 형성 하였다. 이 시점에 빛의 산란이 없어지며 직진 함으로 우주 배경 복사가 되었다.

 

 

우주에 평균보다 약간 더 밀도가 높은 지역이 있어서 이 지역이 질량을 끌여 들여 대략 10억년쯤에 첫 번째 별과 은하를 만들었다. 별의 내부에서 시작된 핵 반응은 중간 크기의 원소를 만들었고 무거운 원소들은 죽어가는 별들의 내부에서 만들어 졌다. 이 원소들 덕에 생명체가 생겨 진화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150억년이 되어서야 오늘 날의 인류가 있게 되었다."

 

(출처:  http://blog.daum.net/towmoon/4132189     )

 

(Big Bang, the origin of the universe, simon singh, Harper Perennial, new york-london-toronto-sydney, 2005) 필자가 가지고 있는 책의 요약 

  

 

"프레드 호일(Fred Hoyle)의 핵 합성 조건 계산

 

 

프레드 호일(Fred Hoyle)이 어떻게 핵 합성(nucleosynthesis)이 발생하는지 보기 위하여 다른 별들의 삶의 단계에서의 별들의 내부에서의 조건들을 계산했다. 아래 표는 우리의 태양보다 대략 25배 질량이 더 큰 별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핵 합성 반응을 보여준다. 이런 무거운 별은 통상적인 별들과 비교해 보았을 때 아주 짧은 수명을 가지고 있다. 처음에는 별들은 수소를 헬륨으로 융합하는 데 몇 백만 년을 사용한다. 온도와 압력이 별들의 삶의 끝부분 동안 상승하고, 그리고 산소, 마그네슘, 실리콘, 철과 다른 원소들의 핵 합성을 허용한다. 여러 종류의 더 무거운 원자들이 마지막의 그리고 가장 격렬한 단계 동안 생성된다."

 

 

단 계 온도( ℃ ) 밀도( g/cm³ ) 단계의 지속 시간
수소 → 헬륨 4X10⁷ 5 10⁷년
헬륨 → 탄소 2X10⁸ 7X10² 10⁶년
탄소 → 네온+마그네슘 8X10⁸ 2X10⁵ 600년
네온 → 산소+마그네슘 1.2X10⁹ 5X10⁵ 1년
산소 → 황+ 실리콘 1.5X10⁹ 1X10⁷ 6개월
실리콘 → 철 2.7X10⁹ 3X10⁷ 1일
중심 수축(Core collapse ) 5.4X10⁹ 3X10¹¹ 0.25초
중심 되튀김(core bounce) 23X10⁹ 4X10¹⁴ 0.001초
폭발 약 10⁹ 가변 10초

 

(출처: Big Bang, the origin of the universe, simon singh, Harper Perennial, new york-london-toronto-sydney, 2005, p.388 필자의 번역)

 

 

 

태양

 

 

(출처: NASA 홈페이지)

 http://www.nasa.gov/multimedia/imagegallery/image_feature_21.html 

 

 

 

"우리 태양

 

 

Our Sun

 

 

304 옹스트론(빛의 파장의 측정 단위; 1밀리의 1,000만분의 1; 기호 Å, A, A.U.) 파장 길이로 1999년 9월 14일 찍힌 큰 핸들 모양으로 생긴 홍염(紅焰)의 극단 자외선 화상 망원경(EIT) 화상 - 홍염은 태양의 뜨겁고 엷은 코로나 내에 떠있는 상대적으로 차갑고 조밀한 플라즈마의 큰 구름이다. 때때로, 홍염은 태양의 대기를 벗어나서 분출할 수 있다. 이 기괴한 선의 분출은 약 절대 온도 6만도의 온도를 가진 상(上) 채구(彩球)(태양의 주변을 덮은 붉은색 가스층)를 보여준다. 이 화상 내의 모든 특징은 자기장 구조를 나타낸다. 가장 뜨거운 지역은 거의 백색으로 나타나고, 반면에 어두운 적색 지역은 낮은 온도를 나타낸다. SOHO/극단 자외선 화상 망원경(EIT) 콘소르티움의 허가에 의함. SOHO(Solar & Heliospheric Observatory, 태양과 태양권<태양풍의 영향이 미치는 태양 주변부>의 천문대)는 유럽 항공국(ESA, European Space Agency)와 미국항공우주국(NASA)의 국제 협동 프로젝트이다.

 

 

Extreme Ultraviolet Imaging Telescope (EIT) image of a huge, handle-shaped prominence taken on Sept. 14, 1999 taken in the 304 angstrom wavelength - Prominences are huge clouds of relatively cool dense plasma suspended in the Sun's hot, thin corona. At times, they can erupt, escaping the Sun's atmosphere. Emission in this spectral line shows the upper chromosphere at a temperature of about 60,000 degrees K. Every feature in the image traces magnetic field structure. The hottest areas appear almost white, while the darker red areas indicate cooler temperatures. Courtesy of SOHO/Extreme Ultraviolet Imaging Telescope (EIT) consortium. SOHO is a project of international cooperation between ESA and NASA."

 

(출처: NASA 홈페이지)

  http://www.nasa.gov/multimedia/imagegallery/image_feature_21.html

 

 

 

 

"태양은 은하계에 있는 1000억 개 보다 많은 별들 중의 하나의 별이다. 태양은 은하계의 중심으로부터 약 2만 5천 광년 거리에 있고, 그리고 2억 5천 만 년에 한 바퀴씩 은하 중심을 공전한다. 빛이 진공 속을 1년 동안 여행하는 거리인 1광년은 약 5.88조 마일(9.46조 Km=9.46X10¹² Km)와 같다.

 

 

The sun is one of over 100 billion stars in the Milky Way Galaxy. It is about 25,000 light-years from the center of the galaxy, and it revolves around the galactic center once about every 250 million years. One light-year, the distance that light travels in a vacuum in a year, equals about 5.88 trillion miles (9.46 trillion kilometers).

Image credit: NASA/Transition Region & Coronal Explorer

 

 

 

 

 

 

 

태양은 직경이 약 86만 4천 마일(139만 Km)이고, 지구의 직경의 약 109배인 별이다. 가장 큰 별은 태양의 직경의 약 1천배의 직경을 가지고 있다.

 

The sun is a star with a diameter of approximately 864,000 miles (1,390,000 kilometers), about 109 times the diameter of Earth. The largest stars have a diameter about 1,000 times that of the sun."

Image credit: NASA/NSSDC

 

(출처:NASA 홈페이지)

  http://www.nasa.gov/worldbook/sun_worldbook.html 

 

 

 

“태양과 같이 질량이 중간 정도인 항성은 약 100억년 정도의 수명을 가지고 있다. 태양은 지금까지 일생의 절반 정도를 보낸 것으로 추측된다.”

 

 

 

 

(출처: 위키백과 검색어: 항성 진화)

http://ko.wikipedia.org/wiki/%ED%95%AD%EC%84%B1_%EC%A7%84%ED%99%94

 

 

 “약 54억 년 후, 태양 중심핵에 있던 모든 수소 연료는 헬륨으로 치환된다. 이제 중심핵은 더는 내리누르는 압력을 이기지 못해 수축하기 시작하며, 중심핵이 수축하면서 중심핵 바깥쪽의 온도가 수소를 태울 정도로 높아진다. 이 과정이 심화하면서 태양의 외곽층은 막대하게 부풀어 오르게 되며, 적색 거성으로 불리는 진화 단계에 접어들게 된다. 75억 년 후 태양의 외곽층은 1.2천문단위(지금 태양 반지름의 256배)까지 팽창할 것이다. 이 단계는 적색 거성 가지로, 팽창한 만큼 표면 온도는 2600켈빈까지 내려가서 붉은색으로 빛나게 되며, 밝기는 지금의 2700배까지 올라간다. 태양은 적색 거성 단계에서 항성풍 형태로 원래 지녔던 질량의 3분의 1을 날려 보낸다.

 

 

 

 

 

먼 미래 적색 거성이 된 태양의 상상화. 지구는 이미 오래 전에 생명체가 살 수 없는 불모의 행성이 되었으며, 한때 이 행성에 지적 생명체가 있었음을 증명하는 구조물이 보인다.

 

 

태양이 팽창하면서 수성은 태양으로 빨려 들어가며, 금성도 같은 운명을 겪을 가능성이 있다. 지구의 운명은 확실하지 않다. 태양의 크기가 지금의 지구 궤도까지 팽창되더라도, 그때 태양은 이미 질량을 많이 잃은 상태이기 때문에 행성의 궤도는 지금보다 커질 것이다. 만약 이 가설만을 고려하면 금성과 지구는 뒤로 물러나서 태양에 빨려 들어가는 것은 면할 것이다. 그러나 2008년 발표된 연구로는, 지구는 밀도 낮은 상태의 태양 외포층의 로시 한계 내에 있게 되고, 그 때문에 태양에 먹힐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점진적으로 태양 중심핵 바깥쪽에서 연소한 수소는 중심핵의 질량을 현재 태양 질량의 45퍼센트까지 증가시킨다. 이 시점에서 중심핵 부분의 온도와 밀도는 매우 높은 단계에 이르고, 헬륨 연소로 탄소가 생성되는 단계로 넘어가게 되며, 헬륨 섬광 현상이 발생하게 된다. 태양은 현재의 250배 수준에서 11배 수준까지 반지름이 줄어든다. 밝기 역시 지금의 3천 배에서 54배로 감소하며, 표면 온도는 4,770켈빈까지 올라간다. 태양은 주계열성 상태일 때 중심핵에서 수소를 태우듯, 중심부에서 안정적으로 헬륨을 태우는 수평가지 단계로 진입한다. 헬륨 연소 단계는 1억 년 정도만 지속한다.

 

 

마침내 항성은 다시 바깥쪽 층으로 연료를 태우는 장소를 옮기게 되는데, 이 때문에 항성의 부피는 다시 확장되면서 점근 거성 가지 단계로 돌입한다. 여기서 태양의 밝기는 다시 상승하며 현재의 2090배까지 밝아지고 표면 온도는 3500켈빈까지 내려간다. 이 단계는 약 3천만 년 동안 지속하고 이후 10만 년에 걸쳐 태양의 외곽층은 대량의 물질을 우주 공간으로 뿌리면서 행성상 성운으로 불리는 헤일로를 형성하면서 떨어져 나가게 된다. 태양이 뿌리는 물질은 핵융합 작용으로 만든 헬륨과 탄소로, 이들은 성간 물질이 되어 향후 태어날 별들의 재료가 된다.

 

 

그러나 이는 초신성과는 달리 상대적으로 조용한 최후이다. 태양은 질량이 작아서 초신성이 될 수 없다. 우리 지구인이 만약 이때까지 생존해 있다면, 태양풍의 속도가 막대하게 증가한 것을 지켜보게 될 것이다. 이 태양풍은 지구를 소멸시킬 정도로 강력하지는 않다. 다만, 태양이 질량을 잃게 되면서 살아남은 행성의 궤도는 혼돈 상태로 빠지며, 일부는 서로 충돌할 가능성도 있고, 일부는 조석 상호 작용에 따라 산산조각이 날 수도 있다. 결국, 태양이 진화를 마치고 남기는 것은 백색 왜성이다. 백색 왜성은 밀도가 매우 높아서 질량은 원래 태양의 54퍼센트 정도이나, 부피는 지구와 비슷할 것이다. 백색 왜성은 처음에는 지금의 태양보다 백 배 더 밝다. 백색 왜성은 탄소와 산소 축퇴 물질로 이루어져 있으나 이들을 태울 정도로 뜨겁지는 않다. 따라서 백색 왜성은 서서히 식으면서 점점 어두워진다.

 

 

태양이 죽어가는 과정에서 행성, 혜성, 소행성에 미치는 중력은 점차 약해진다. 살아남은 행성 전부 현재 궤도보다 뒤로 물러날 것이다. 예를 들면 만약 금성, 지구, 화성이 그때까지 살아남으면 각각 1.35, 1.85, 2.8천문단위로 현재의 궤도보다 태양에서 더 멀리 떨어진 곳을 돌게 된다. 모든 행성은 어둡고 얼어붙은, 생명체가 살 수 없는 환경이 될 것이다. 행성들은 태양 주위를 계속 돌지만, 공전 궤도가 커졌기 때문에 공전 속도는 느려진다. 20억 년 후 태양의 표면 온도가 6,000~8,000켈빈까지 냉각되면서, 태양 중심핵에 있는 탄소 및 산소도 온도가 떨어진다. 그 결과 태양 원래 질량의 90퍼센트 정도가 결정체 구조로 된다. 수십억 년이 흐르고 태양은 더는 빛을 내지 않는 흑색 왜성이 되어 시야에서 사라질 것이다.

 

 

고리 성운. 태양도 진화의 마지막에 이르러 이와 비슷한 운명을 맞게 될 것이다."

 

(출처: 위키백과 검색어: 태양계의 형성과 진화) 

http://ko.wikipedia.org/wiki/%ED%83%9C%EC%96%91%EA%B3%84%EC%9D%98_%ED%98%95%EC%84%B1%EA%B3%BC_%EC%A7%84%ED%99%94

 

 

 

 

영혼의 시간

 

 

인간은 육체와 미세 에너지로 크게 나눌 수 있다.

 

육체는 별들의 생노병사의 활동으로 생긴 물질들로부터 온 것으로 음식을 먹고 물을 마시고 공기를 호흡하면서 약 100년 전후의 시간을 이 땅에서 살아간다.

 

 

반면에 미세 에너지는 예민한 기감 능력자에게는 계란 모양과 같이 육체를 입체적으로 둘러싸고 있는 여러 층으로 구성된 미세 에너지로 기감 된다. 기감학에서는 미세 에너지를 에테르체, 아스트랄체, 멘탈체, 코잘체로 분류를 한다.

 

 

필자는 영혼을 기감하는 능력과 유체이탈하는 능력을 발견하게 되었다. 필자의 몸에 처음 다른 영혼이 들어왔을 때, 필자가 느낀 시간은 불과 몇 분 정도의 시간이라고 느꼈다. 그러나 30 - 40 분이라는 시간이 흘러 가버렸다. 그리고 처음 유체이탈을 할 때도 그렇게 긴 시간이 흘러간 것으로 느끼지 않았는 데, 보통 몇 십 분씩 흘러가 버린 것을 알았다.

또한 필자가 저승 체험을 할 때도 유체이탈한 후에 잠깐 동안이 지나간 것 같았는 데, 약 8 시간의 시간이 흘러가 버린 것을 알았다. 그것뿐만이 아니라 여러 번의 유체이탈을 행하면서 영혼의 시간이 육체의 시간과 다른 것을 경험하였다.

 

 

유체이탈하면 뇌파에 변화가 생기고, 그리고 손바닥의 온도가 내려간다.(TVN 리얼스토리 묘 제작진의 유체이탈 시 뇌파 및 손바닥 온도 측정) 육체의 생명 현상을 주관하는 미세 에너지의 일부가 육체에서 빠져 나오면 당연히 생리적으로 변화가 생긴다. 유체이탈할 때 몸무게가 변화할 가능성은 있으나 아직 측정해 보지 않았다.

 

미국의 맥두걸 씨는 임종 전후로 인간의 몸무게가 약 21g 줄어든다는 것을 발견하였고, 일본의 가와다(川田薰) 교수는 쥐의 죽음 전후에 미세한 무게의 차이를 측정하였다.

 

 

필자는 유체이탈하는 미세 에너지는 전자기파와는 정반대의 극성을 가진 따뜻한 기감 느낌의 기감추 시계 방향의 양의 극성을 가진 미세 에너지로 기감하고 있다. 유체이탈하면 오감의 기능이 약해지고 시간 감각이 무뎌진다. 그리고 유체이탈이 많이 진행되어 탈혼 상태인 무의식에 가까이 접근하면 몽롱해지고, 시간 감각을 거의 잊게 된다. 영혼의 미세 에너지가 육체로 돌아오면 점차적으로 의식이 맑아지고 오감이 강화된다.

 

 

 

전자기파를 사용하는 휴대폰의 기감도

 

 

 

 

-200 % 지하 수맥의 유해 지기 상의 필자의 미세 에너지 그림

 

 

 

영혼은 열이 없다. 육체가 가진 오감의 춥고 배고프고 아프고 하는 감각이 없다. 그리고 유체이탈 했을 때 시간이 빨리 갔다. 유체이탈하면 주위가 밝았다. 영혼은 밝지 않은 미세한 빛이다. 필자가 생각하는 영혼은 반짝이는 하얀 모습으로 기감되고, 육체에서 빠져나오면 공간으로 상승하면서 연기같이 퍼지는 모습으로 기감되었다. 영혼은 육체가 없는 존재이므로 지구의 시간에 구애받지 않으므로 육체와 같이 늙지 않고, 다만 우주 공간에서 우주의 시간과 같이 이합집산할 뿐이다.

 

태양의 수명이 약 100억년 정도이고, 태양보다 작은 별은 훨씬 더 오래살고, 태양보다 큰 별은 더 빨리 죽으면서 그 과정에서 생성된 무거운 물질들을 우주에 흩뿌린다. 그 물질이 다음 태어나는 별에 흡수되어 삶을 이어가고, 모든 것은 형태만 바뀔 뿐 계속하여 다른 생명이 살아가는 재료가 된다. 영혼의 미세 에너지도 마찬가지로 이합집산하며 다른 생명이 태어나도록 하는 원인이 되는 것으로 필자는 보고 있다.

 

 

미국의 맥두걸 씨는 영혼을 물질의 연장선상으로 이해를 하여 영혼 물질(soul substance)이라고 불렀다. 인간은 가벼운 것과 무거운 것으로 크게 나눌 수 있고, 무거운 것은 물질로, 가벼운 것은 미세 에너지로 구성된 것으로 볼 수 있고, 영혼은 미세 에너지 중에서 더 미세한 에너지로 되어 있는 것으로 필자는 보고 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무에서 유로, 유에서 무로 되지 않는다. 반드시 유에서 유로 존재를 바꿀 뿐이다.

 

 

임종하고 있는 노파의 미세 에너지 그림 - 미세 에너지가 전체적으로 약해져 있고, 정수리에서 미세 에너지가 빠져 나가고 있다.

 

 

 

 

영혼은 육체 속에서 생명 현상을 일으키는 원인인 미세 에너지이다. 미세 에너지는 중력의 지배를 받지 않는다. 유체이탈 상태, 임종할 때, 중간계나 저승에 있는 미세 에너지 상태의 영혼은 중력이 적용되지 않는다. 육체를 빠져나간 영혼은 우주로 부유하여 우주의 미세 에너지의 흐름대로 우주 중심으로, 우주의 여러 별로, 또는 지구로 일부는 리사이클 되어 생명의 탄생에 쓰이고, 나머지는 우주의 어딘가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생명의 형태뿐만 아니라 전혀 다른 생명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라고 필자는 생각하고 있다. 마치 지구상의 모든 물질이 형태만 바뀔 뿐 계속 리사이클 되고 있듯이, 영혼도 그러하리라 생각하고 있다.

 

 

탐진치에 물들어 있는 물질적 미세 에너지를 많이 가진 무거운 영혼은 중력이 적용되어 가라앉는다. 이런 영혼은 지구를 벗어나지 못하고 지구상에서 지박령이나 부유령이 되어 떠돈다. 영혼이 가벼워지려면 물질과 멀어져야 한다. 가벼운 성분인 미세 에너지가 육체를 통하는 기도 기문이 열려 운행할 수 있어야 영혼이 천기 지기를 공급 받아 육체를 가지고 있을 때는 건강한 육체와 건강한 영혼으로 공존하게 되고, 육체를 떠날 때는 그때 가지고 있는 미세 에너지를 가지고 우주로 비상한다.

 

 

필자가 경기도 성남영생관리사업소에서 그린 미세 에너지 그림 

 

-화장장을 떠도는 수많은 영혼 때문에 미세 에너지가 약해진 필자의 미세 에너지 그림

 

 

 

모든 공부는 육체를 통하는 미세 에너지의 기문과 기도를 여는 것이 기본이다.

이 세상을 보는 관점을 초월적 존재로 향하고, 진아로 향해야 비로소 미세하고 가벼운 성분인 미세 에너지가 운행이 되기 시작한다.

무거운 성분인 육체를 강화시킬려고 하면 운동과 좋은 식사가 좋고, 가벼운 성분인 영혼을 강화시킬려고 하면 수련 수행 기도 등을 해야 한다.

 

 

좋은 미세 에너지를 가진 영혼의 기감도

 

 

 

물질 얻으면 영혼이 약해지고, 영혼을 얻으면 물질에 무관심하게 된다. 처음에는 물질과 영혼이 타협을 하여 이 물질 세계에서 조화하여 살아가다가, 결국에는 영혼을 추구하는 것이 현 시대를 살아가는 현명한 방법일 것이다. 물론 처음부터 영혼을 추구하는 삶이라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그 동안 예수, 석가, 공자, 맹자, 노자, 장자, 마호멧트, 여러 철학자와 여러 과학-기술자 등 수많은 사람들이 수많은 성공적인 방법을 제시하였다. 그러나 누구던지 자기 자신의 비법을 가져야 비로소 자신의 영혼을 진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자기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방법을 스스로 찾아야 할 것이다.

 

 

육체의 관점으로는 이 땅에서 100여년 정도 살다 가는 것이 사람이나, 영혼의 관점으로 본 인간의 영혼은 우주의 수명과 같은 시간을 우주의 품에서 살아간다. 천문학 물리학 철학 종교 등 어떤 학문 분야도 유형자와 무형자의 일부만 보고 있는 것이다. 초월적 존재, 생명의 근원, 하느님, 진아, 영혼, 미세 에너지 등 무엇이라고 부르던 간에 무엇인가가 더 있다.

 

 

기감 능력을 개발하여 영혼의 미세 에너지를 강화하는 방법을 알아서 좋은 잠자리, 좋은 일자리, 좋은 음식, 좋은 정신, 좋은 영혼을 가지고 이 세상에 살다가, 때가 되면 가볍고 미세한 성분인 영혼만 가지고 우주로 - 저승으로 미련 없이 가는 것이 크로노스적 가치관보다 카이로스적 가치관인 영혼의 진화 - 발전을 이루도록 노력하는 것이 바로 진리 추구의 올바른 길일 것이다.

 

 

 미세 에너지가 잘통하는 사람의 기감도

 

 

 

과연 우리는  지금 여기에서 우주에 대하여, 지구에 대하여, 인간에 대하여 대부분 알았을까?

 

 

“과거의 과학자들은 모든 것을 알았다고 말했지만 매번 틀린 것으로 드러났다. 더 많이 알기 위해서는 훨씬 더 많이 알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아야만 한다.”(베리 파카 저, 김혜원 역, 충돌하는 은하, 전파과학사, 서울, 1998, p.325)

 

 

우리는 천지인을 아직 잘 모르고 있다. 그것을 겸허하게 인정하고 그 동안 인류가 가지고 있는 종교 체계, 사상 체계, 과학 체계 등 모든 학문 체계를 기초로 하여 더 많이 알려고 노력하는 자세를 가질 때, 비로소 진리를 향해 올바른 길로 가는 방향을 바로 잡은 것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