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10. 8. 14:14ㆍ기공의 인물/베어 씨의 기감추 연구
베어 씨의 기감추 연구
Gertrud Huerlimann, Pendeln ist erlernbar, M & T-Verlag, Zuerich, 1988, p.198-215
"20 세기의 라디에스테지 과학을 뒤돌아보면 물리학적인 라디에스테지의 기본은 독일 드레스덴(Dresden)의 베어(Johann Karl Baehr) 교수로부터 시작되었다.
베어 교수는 20 년이 넘도록 오래된 미신인, 미래를 알 목적으로 실에 매단 금반지가 회전 운동을 하는 현상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베어 교수는 옛날부터 전해 오는 많은 미신들 중에는 조금의 진실이 숨겨져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그 문제를 시험해 보기로 하였다. 이 실험에서 그는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을 수 없었다.
베어 교수의 기감추 실험은 실패하였고, 그에게는 큰 충격이었다. 그래서 그는 1852 년 우연히 자신과 유사한 문제를 연구하고 있는 젊은 사람을 만나기 위해 여행을 떠났다.
두 사람은 기감추를 엄지손가락과 집게손가락 사이에 잡고서 기감 실험을 행하였다. 1854 년 베어 교수는 마요(Dr. Herbert Mayo) 씨가 쓴 “민간 미신의 진실(Wahrheiten des Volksaberglaubens)"이라는 영어로 된 책을 하르트만(Dr. Hugo Hartmann) 씨가 독일어로 번역한 책을 읽고서 자신의 기감추 실험을 2 배의 노력을 경주하여 계속 진행하게 되었다.
마요 씨는 그의 기감추 기감 연구에 대한 첫 번째 자극은 보파르트(Boppard)에 있는 고등학교 수학 교수인 카스파리(Caspari) 씨의 측근으로부터 받았다. 카스파리 씨는 1 년 전에 마요 씨와 유사한 실험을 하여 기감봉과 유사한 기감추의 운동을 주목할 만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마요 씨는 자신의 책에서, 기감추를 매달은 실을 오른손 집게손가락 끝에 매달았을 때와 그리고 기감추 끈을 엄지손가락과 집게손가락 사이에 잡았을 때, 기감추가 서로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을 관찰하였다.
마요 씨는 기감추로 기감 조사시 예를 들어 금, 은, 아연을 기감추로 기감할 때는 길이 방향으로, 평평한 유리, 구리를 기감할 때는 대각선 방향으로 기감추가 움직이는 것을 기감하였다 라고 쓰고 있다. 베어 씨의 기감추 기감 결과는 정 반대를 나타내었다. 왜냐하면 베어 씨는 마요 씨와 같이 기감추 끈을 오른손 집게손가락에 고정시키지 않고, 엄지손가락과 집게손가락 사이에 기감추 끈을 잡고서 기감 조사를 행하였기 때문이었다.
베어 씨는 그렇게 자신의 기감 결과를 얻었고 그리고 여기서 기감된 결과로부터 기감 법칙을 연구하였다. 베어 씨는 자신이 쓰고 있는 글의 가장 중요한 자리에 마요 씨의 책으로부터의 내용을 쓰고, 그 책들을 한동안 옆으로 치워 두었다. 베어 씨는 기감추 기감 실험에서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게 되면 비로소 다시 그 책을 손에 대기로 결심하였다.
베어 씨는 자신 보다 먼저 기감추를 연구하기 시작한 그레이(Stephan Gray, 1736) 씨, 셰퍼(Dr. Jakob Christian Schaeffer, 1776) 씨, Thouvenel 씨, 가르디니(Gardini) 씨, 포르티(Forti) 씨, 아모레티(Amoretti) 씨 등 많은 기감추 연구가들을 모르고 있었다. 비로소 베어 씨가 기감추 기감 연구의 중요한 부분을 끝내고 나서 다른 사람들의 연구에 대해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베어 씨의 연구실
베어 교수가 사는 집은 가로 방향이 거의 지자기 흐름 방향으로 놓여 있었다. 지자기 방향과 집의 서쪽이 14 도 정도 삐뚤어져 있었다. 베어 씨가 기감추 운동을 관찰했던 방은 집의 북쪽 면에 위치해 있었고, 큰 창문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몸은 기감추 기감 실험을 하는 동안 창문으로 들어오는 밝은 빛을 피하기 위하여 얼굴을 남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지자기 방향으로 향하겠다는 의도 없이 지자기 방향으로 향하고 있었다. 기감추의 움직임은 기감추 끈을 오른손 집게손가락에 고정시키고 그가 나중에 절대 양(絶對陽, absolut-positive)이라고 명명한 물체 위에서 기감 실험을 할 때는 지자기 방향으로 진동하였고, 기감추를 절대 음(絶對陰, absolut-negative)이라고 명명한 물체 위에서 기감추 기감을 행하였을 때에는 지자기 방향과는 90 도 각도를 이룬 지자기 적도 방향으로 진동하였다.
베어 씨의 기구
베어 씨는 기감추로 행하는 기감 실험을 다이나믹 실험(dynamische Pruefung)이라고 불렀고, 기감추를 다이나믹 칼(dynamisches Messer)로, 원형의 기감 나무판을 측정원(測定圓, Messkreis)으로, 측정원과 기감추를 다이나믹 기구(dynamischer Apparat)로, 인체 즉 기감 능력자를 다이나믹 매개체(dynamisches Medium) 라고 불렀다.
베어 씨는 자신의 책 2 권을 다 썼을 때 자신의 다이나믹 실험(기감 실험)이 기감추 기감학을 완성시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베어 씨는 실험에 여러 가지의 기감추를 사용하였다. 첫 번째는 황동(Messing)으로 된 기감추였다. 두 번째는 나무로 된 기감추였고, 이 기감추는 너무 가벼웠다. 세 번째 기감추는 첫 번 째, 두 번 째 기감추보다는 큰 기감추로 속이 비어 있는 납으로 된 기감추였다.
네 번째는 나무로 만든 가운데 속이 빈 공간이 있는 큰 기감추로 가장 좋은 기감추 기감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그 기감추 길이는 2.5 촐(Zoll, 1 Zoll = 2.3 cm), 무게는 3.5 로트(Loth, 1 Loth = 16.67 g), 기감추 길이는 3 푸스 11.5 촐(1 Fuss = 31.4 cm) 였다(Zoll, Loth, Fuss는 베어 씨가 기감 실험을 할 당시에 사용하던 무게, 길이 단위).
베어 씨는 4 번째의 기감추로 기감 실험을 하면서 기감 조사하려는 물체를 책상 위에 놓지 않고 방바닥에 놓고 실험을 하였다. 오른손을 지지하기 위하여 3 푸스(Fuss) 높이의 경사진 널빤지를 붙인 대를 사용하였다. 기감추 끈은 고리 모양으로 오른손 집게손가락에 고정시켰다. 오른손 집게손가락의 지문이 있는 안쪽을 하늘 방향으로 향하게 하였다. 엄지손가락이나 다른 손가락은 기감추 끈과 접촉하지 않았다. 베어 씨는 얼마 후에 기감추 실험대를 개선하였다.
기감추 실험 시 오른팔을 위하여 0.5 촐(1.15 cm) 길이의 두꺼운 막대기를 기감추 실험대에 덧대고, 홈을 파서 기감추를 필요에 따라서 높이를 높게 낮게 조절할 수 있게 하였다. 이 나무막대기의 끝은 흰 종이로 감쌌다. 기감추를 오른손 집게손가락으로 잡는 대신에, 베어 씨는 종이로 싼 나무 막대기의 끝에 기감추 끈으로 고리를 만들었다. 기감추 실험대는 높이 조절이 가능한 막대기와 같이 지자기 방향으로 위치시켰다.
베어 씨의 기감추대(氣感錘臺)
처음 베어 씨는 기감추가 기감 능력자의 손에 들려 있어야 한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이 방법을 기감추 현상의 존재를 증명하는 데 가장 맞는 방법으로 생각했다. 왜냐하면 이 방법이 기감추에 인체의 힘이 직접적으로 작용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완벽하게 객관적인 실험을 행할 수 있게 하기 위하여 베어 씨는 처음 나무로 만든 기감추대(氣感錘臺)를 사용하였다. 그리고 나서 그는 기존의 기감추대를 개선한 새로운 기감추대를 제작하였다.
360 도 측정원(測定圓)
베어 씨가 바빌론 사람에게서 넘겨받은 측정원은 송진이 없는 건조한 원형 나무판으로 8 촐(18.4 cm)의 직경을 가지고 있었고, 원주에는 22.5 도 간격으로 눈금이 표시되어 있었다. 그는 나무로 된 측정원을 지자기 방향으로 위치시켰다. 즉, 0 도는 남쪽 방향, 180 도는 북쪽 방향, 90 도는 동쪽 방향, 270 도는 서쪽 방향으로 향하게 하였다.
베어 씨는 모든 재료를 시험하면서 하나의 시스템을 도입하였다. 즉, 그는 모든 재료를 기감할 때 360 도 각도의 원에서 나타나는 각도로 기감 목록을 만들었다. 모든 재료는 베어 씨의 기감 각도 속에서 한자리를 차지하였다. 모든 물체는 그 물체의 방사(放射)에 따라서 0 도에서 360 도 사이의 측정원 원반의 반 시계 방향으로 놓여진 원의 내부에서 기감추로 기감 실험을 하였다.
기감추 실험에서 눈금 단위는 각도이다. 베어 씨의 기감 실험에서 가장 작은 기감 측정 단위는 2.5 도였다. 베어 씨는 남-북 방향의 기감추 진동을 길이 방향 그리고 양의 선(positive Strichung)으로 불렀다. 최초의 기감추 실험에서 0 도에서 180 도의 각도로 진동하는 비극성체를 그는 양의 물체로 불렀다.
베어 씨는 동-서 방향의 기감추 진동을 넓이 방향 그리고 음의 선(negative Strichung)으로 불렀다. 최초의 기감추 실험에서 90 도와 270 도로 기감추가 진동하는 비극성체를 음의 물체로 불렀다.
비교 재료로서의 금(gold)
베어 씨는 360 도로 된 나무로 된 측정원으로 기감 시험을 행한 결과 어떤 재료도 금이나 수소 보다 더 양(陽)적인 반응을 보인 재료가 없다고 결론지었다. 이러한 이유로 베어 씨는 기감 비교 실험에 0 도로 기감된 금을 사용하였다. 기감 실험을 쉽게 하기 위하여 베어 씨는 표면을 매끄럽게 마무리한 2 촐(18.4 cm)의 지름을 가진 은판, 구리판, 아연판, 철판 등을 제작하여 각 판을 22.5 도의 각도로 8 부분으로 나누어 놓았다.
다이나믹 간격(기감 간격)
어느 물체의 다른 물체에 대한 기감추 기감 실험의 상대치를 결정하기 위하여 왼손으로 기감 실험하는 물체를 접촉하고 오른손으로 기감 비교 물체인 금을 기감하는 실험을 행하였다. 이렇게 하여 두 물체 사이에는 힘의 변화의 상대치로 기감추 진동 각도를 결정할 수 있었다. 금과 은(silber)은 베어 씨의 실험에서 양의 원소로 기감되었다. 여기서 금은 가장 양적인 물체로 나타났다. 금은 기감원에서 0 도의 각도의 자리를 차지하였다. 은을 기감 실험한 결과 45 도 왼쪽으로 기감되었다. 즉, 은은 금보다 45 도 정도의 각도로 덜 양적인 것을 뜻한다. 그리하여 은은 금의 45 도 왼쪽 각도의 자리를 차지하였다.
검사 기감 과정(검사 기감 시험)
기감원의 가운데 놓여 있는 물체는 은이다. 은 위에 기감추를 위치시키고 왼손으로 금을 접촉하고 다이나믹 간격(기감 간격)을 측정하였다. 여기서 기감추는 45 도 각도 우측으로 기감되어 315 도 각도에서 정지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베어 씨는 우측으로 기감추가 회전하는 기감을 양으로, 좌측으로 회전하는 기감을 음으로 표시하였다. 기감 실험 시 기감추가 돌아간 각도의 크기가 다이나믹 간격이다. 결과는 금은 은보다 45 도 양적(陽的)이다.
베어 씨는 모든 꽃은 완전히 양적이고, 모든 뿌리는 완전히 음적(陰的)인 성격이고, 그리고 모든 살아 있는 식물의 잎은 양적인 기감추 회전으로 기감된다는 것을 증명하였다. 꽃이 줄기의 꽃자루로부터 분리가 되면 꽃의 극성은 영구 자석과 같이 새로운 음양의 구조를 나타내었다.
실험자가 남북 방향으로 위치해 있고 만발한 수선화의 꽃받침 쪽을 지자기 방향인 북쪽으로 위치시키면 꽃은 양의 극성을 띠고, 꽃자루는 음의 극성으로 기감추가 진동하는 것을 기감할 수 있었다. 파는 상부가 양, 하부가 음의 극성이다. 열매 껍질은 끝 부분이 양, 줄기에 붙은 부분이 음의 극성이다. 버찌는 꽃잎 끝이 양, 줄기 부분이 음의 극성이다. 오이는 끝 부분이 양, 줄기 부분이 음의 극성을 가지고 있다. 땅에 심어 놓은 백합꽃에서도 자석과 동일한 극성을 나타내었다.
자석을 반 토막을 내면 잘려진 자석은 다시 음양의 극성을 가지듯이, 베어 씨는 모든 유기체를 이루고 있는 구성 요소들이 각각 음양의 극성으로 나누어진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이 현상은 식물이 함유하고 있는 물질에서도 같은 현상이 관찰되었다. 또한 베어 씨는 뇌의 극성 관계를 기감 조사하였다. 기감 조사한 뇌는 송아지의 뇌로, 대뇌 반구의 흰 부분은 0 도로 기감되었고, 회색을 나타내는 부분은 90 도를, 대뇌와 소뇌를 연결시키는 변지체(胼胝體)는 45 도를 나타내었다.
소뇌의 흰 물질은 22.5 도, 회색 물질은 112.5 도를, 골수는 67.5 도를 나타내었다. 대뇌 반구의 흰 물질 덩어리는 회색 물질 덩어리와 반대의 극성을 나타내었고, 변지체는 그 중간에 위치하였다. 소뇌의 흰 물질은 회색 물질과 반대의 극성을 나타내었고, 두 물질 사이에 골수가 위치하였다. 모든 뇌의 부분들이 완전히 양적인 성격으로 22.5 도 간격으로 서로 다음 위치에 자리잡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