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10. 9. 08:56ㆍ기공의 인물/폰 폴 씨의 기감 조사
폰 폴 씨의 기감 조사
Mayer-Winklbaur, Wuenschelrutenpraxis, (Orac, Wien, 1985), p.88-90
Die Messungen des Freiherrn von Pohl
Haben Sie gewußt, daß es Krebs-Punkte, ja sogar
Krebs-Häuser gibt?
Diese kühne Behauptung stellte der Forscher Gustav
Freiherr von Pohl auf. Er war bereit zu beweisen, was vor
ihm schon andere Rutengänger behauptet hatten: Strahlen
von unterirdischen Spalten und Wasseradern hätten biolo-
gische Wirkung.
Der 29. l. 1929 wurde für die Radiästheten zu einem
historischen Tag. An diesem kalten Januartag wurde die
kleine bayerische Stadt Vilsbiburg durch den Rutengänger
Pohl, amtlich protokolliert und beglaubigt, auf Erdstrah-
len und Reizzonen untersucht. Die amtliche Kontrolle üb-
ten der Bürgermeister, der Vizebürgermeister, einige Ge-
meinderäte und weitere Amtspersonen aus.
Wohlgemerkt: Die amtliche Begehung der Stadt Vils-
biburg ist feierlich und amtlich festgehalten.
Der Zweck dieser Begehung war, daß Freiherr von
Pohl seine Behauptung untermauern wollte, die Wünsche!-
rute sei imstande, krankhafte Reizzonen festzustellen, die
bis zu Krebserkrankungen führen können.
Mit Hilfe seiner Wünschelrute stellte Pohl fest, wo
sich seiner Meinung nach gesundheitlich kritische Plätze in
Vilsbiburg befanden. Ausgehend von den unterirdischen
Wasserläufen trug Pohl die Strahlungszonen in die Stadt-
karte von Vilsbiburg ein.
Ohne von den Untersuchungen des Rutengängers zu
wissen, zeichnete danach der Vilsbiburger Obermedizinal-
rat Dr. Bernhuber die Krebstodesfalle des Ortes ein. Das
Ergebnis war gespenstisch: Die lHäuser der Toten lagen ge-
nau in den kritischen Zonen, die Pohl in die Karte einge-
zeichnet hatte.
Störzonen aus Visbiburg, 1929 durch Freiherrn von Pohl
festgestellt. Erweitert durch J. W. F. Stängle für die Nach-
prüfung mittels Szintillometer
1929년 폰 폴씨가 기감조사했던 필스비부르크의 유해 지기 구역. 쉬텡글레 씨가 느친틸로미터 측정기계를 사용하여 더 확대 재조사하였다.
Mayer-Winklbaur, Biostrahlen, (Orac, Wien, 1986), p.152
Nach dem ersten Aufsehen geriet die Angelegenheit
Vilsbiburg zunächst in Vergessenheit.
Die von Pohl erstellte Krebskarte wurde 33 Jahre spä-
ter aber nochmals in Vilsbiburg überprüft. Der Ulmer Ra-
diästhet Jakob W. F. Stängle kam zu den gleichen Grund-
51 rahlungen wie seinerzeit Freiherr von Pohl.
Das, was Pohl durchführte, war der ersten Versuch in
einer menschlichen Ansiedlung. Was diesen Versuch so
wertvoll macht, ist, daß ihm der ansässige Mediziner recht-
geben mußte.
Die Behörden und die Schulmediziner hatten naturge-
mäß Einwände gegen das Ergebnis von Vilsbiburg. Aber
Pohl ließ sich nicht entmutigen und unterzog auch andere
bayerische Orte ähnlichen Mutungen.
Durch die Untersuchungen von Pohl ermutigt, unter-
suchten andere Ärzte ihre Heimatgemeinden. So etwa der
Stettiner Sanitätsrat Dr. G. Hager (1932) und der damalige
Vorsitzende der Marburger Ärztekammer, Dr. Viktor
Rambeau (1933).
Sie alle wurden im Sinne von Freiherr von Pohl fün-
dig. Und zwar ohne Ausnahme:
Dr. Rambau schreibt in der Auswertung seiner Un-
tersuchung: „Wir haben in unserer statistischen Arbeit ein
Haus gesucht, das auf geologisch nicht götöftem Gelände
liegt und trotzdem Erkrankungen an Krebs aufweist, und
dieses Haus haben wir nicht gefunden.“
Es gibt noch weitere Untersuchungen dieser Art. Sie
wurden in Frankreich und England durchgeführt. Die Er-
gebnisse waren sehr ähnlich.
"암을 유발하는 장소와 집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십니까? 이 대담한 주장은 라디에스테지 전문가 폰 폴(Gustav Freiherr von Pohl) 씨가 주장했다. 폰 폴 씨의 이전에도 여러 라디에스테지 전문가들이 지하의 균열이나 지하 수맥이 발생시키는 유해 지기가 생물학적 영향을 미칠지도 모른다는 주장을 했고, 폰 폴 씨가 증명을 하였다.
1929 년 1 월 29 일은 라디에스테지 능력자들에게는 역사적인 날이었다. 1 월의 추운 날 라디에스테지 전문가 폰 폴 씨의 유해 지기와 나쁜 자리를 기감 조사한 것을 남부 독일 바이언 주의 소도시 필스비부르크(Vilsbiburg) 시가 공식적으로 공증을 하고, 기감하는 과정을 시 측에서는 시장, 부시장, 시의회 의원들 그리고 공무원들이 입회하여 확인하였다.
필스비부르크 시의 라디에스테지 조사 목적은 폰 폴 씨가 주장하고 있는, 사람을 아프게 하여 암으로까지 이르게 할 수 있는 나쁜 자리를 기감봉으로 찾을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한 것이었다. 폰 폴 씨는 자신의 기감봉을 사용하여 기감 조사한 경험으로 봤을 때, 사람의 건강에 나쁜 영향을 미치는 필스비부르크 시의 아주 나쁜 자리를 찾아내었다.
폰 폴 씨는 시의 지하 수맥의 유해 지기가 기감 되는 곳을 시의 지도에 표시를 하였다. 시의 보건소장인 베른후버(Dr. Bernhuber) 씨는 폰 폴 씨의 기감 조사와는 별도로 암으로 죽은 사람의 집을 지도에 표시하였다. 그 결과는 기가 막혔다. 폰 폴 씨가 위험한 자리로 표시한 그 자리에 암으로 죽은 사람의 집들이 표시되어 있었다. 필스비부르크의 기감 조사는 한번 주목을 끌고는 곧 잊혀져 버렸다.
폰 폴 씨가 그린 필스비부르크의 기감 조사도를 한번 더 조사를 하였다. 독일 울름(Ulm) 출신의 라디에스테지 전문가 쉬텡글레(Jakob. Staengle) 씨가 재조사한 결과, 폰 폴 씨가 조사한 것과 같은 결과를 얻었다. 폰 폴 씨가 기감 조사한 경우는 사람이 사는 집단 주택지에 기감 조사를 한 첫 사례였다.
폰 폴 씨의 기감 조사가 가치가 있는 것은 현역의 의사들이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당국과 의사들이 당연히 필스비부르크 시의 기감 조사 결과에 반대 의견을 내놓았다. 그러나 폰 폴 씨는 실망하지 않고 바이언 주의 다른 장소에서 비슷한 기감 조사를 시행하였다.
폰 폴 씨의 조사 결과에 고무되어 쉬테틴(Stettin)의 보건 소장인 하거(Dr. G. Hager) 씨와 마르부르크(Marburg) 의사 협회의 람뵈(Viktor Rambeau) 씨가 자신들이 담당하고 있는 도시들의 기감 조사를 폰 폴 씨에게 의뢰하였다. 람뵈 씨는 기감 조사 결과에 대하여 “우리는 유해 지기에 노출되지 않았으면서 암에 걸린 사람이 있는 집을 찾았으나 그런 집은 발견할 수 없었다” 라고 말했다. 이런 종류의 기감 조사가 프랑스와 영국에서 여러 차례 더 시행되었다. 그 결과는 아주 비슷하였다."
책의 원본: Gustav Freiherr von Pohl, Erdstrahlen als Krankheits- und Krebserreger, (Frech Verlag, Stuttgart, 1986)
번역: 정종호(鄭宗鎬)
라디에스테지(radiaesthesie) 기감학氣感學 전문가,
e-mail: meisterjhj@naver.com
필스비부르크(Visbiburg)의 위치
지전류 - 유해 지기
필자가 "한국 정신 과학 학회 99 춘계 학술 대회 논문집, 땅의 바이오 에너지, 1999 년 4 월"에 발표한 논문에서 인용하였다.
"폰 폴 씨가 사용한 Erdstrahlen의 독일어 원래의 뜻은 지기(地氣)를 뜻하나, 영어로 번역되는 과정에서 earth current, 지전류(地電流)로 되었다. 이 책이 처음 출판된 1932년도에는 라디에스테지 연구가 잘 정리가 되지 않았을 시기로 수맥의 지전류나 그 외 여러 가지의 인간에게 좋지 않는 영향을 주는 지전류를 구별 없이 모두 Erdstrahlen이라고 불렀다. 수맥의 지전류는 여러 지전류 중의 하나일 뿐으로, 현재 유행하고 있는 수맥”이란 용어가 전체적인 지전류를 대신하여 호칭되기에는 적절하지 않다.
기감 조사를 해보면 기감추와 기감봉이 아파트 같은 좁은 구역에서 수많은 지전류에 기감되어 회전하고 움직이는 것을 쉽게 조사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지전류가 전부 수맥이란 말인가?
그래서 필자는 의도적으로 지전류라는 번역을 넓은 의미로 인간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주는 바이오 에너지라고 선택하였고, 수맥이란 용어가 전체적인 지전류를 대표하는 용어로 사용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수맥이라는 말을 들은 일반인들에게 우리 나라 땅속이 수맥의 흐름으로 온통 물바다이고, 그 위에서 우리가 살고 있다는 공포심을 야기하기 때문이다."
필자는 지전류라는 말보다 독일어 원뜻인 지기를 살리면서 유해한 지기라는 뜻으로 유해 지기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로 한다.
한국정신과학학회 소식지 게재 투고문, 2001년 2월 8일, 정종호
위의 글과 달리 지전류를 유해 지기로 고치지 않고 원래 투고한 그대로 지전류라고 두었다.
"필자는 1987 년도에 독일의 남동부에 위치한 바이언(Bayern)주의 뮌헨(Muenchen)에 있는 뮌헨 공과대학(TUM) 전기 공학과에 입학하여 공부를 하고 있었다. 당시에 동료 한국 유학생으로부터 잠자리와 일자리, 공부 자리 등의 공간을 조심해야 한다는 내용의 책을 읽었다는 말을 듣고, 폰 폴 씨의 책을 구입하여 읽어보았다.
폰 폴 씨는 뮌헨 근교에 위치한 도시인 다하우(Dachau) 사람으로 1932년도에 처음 병(病)과 암(癌)의 원인인 지전류(地電流)라는 책명으로 후버스(Hubers) 출판사에서 출판하였으나 별로 알려지지 못하였다.
1978년 이 책이 재 출판되면서 구미 각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 되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지전류가 지나가는 곳에 잠자리나 일자리를 두고 있는 사람을 지전류의 영향이 없는 자리로 이동하게 하여 건강을 회복한 여러 사례를 설명하고 있고, 그리고 암은 지전류의 영향 때문이라는 것을 증명을 하였다.
폰 폴 씨가 활동하던 시절에는 인간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주는 땅의 기를 모두 지전류(earth current, Erdstrahlen)라고 불렀으나, 현재는 제 1, 2, 3 격자, 극장(極場), 수맥(水脈), 단층(斷層) 등 지전류를 여러 종류로 분류하고 있다.
1929년 1월 3일부터 19일 까지 일주일 동안 폰 폴 씨는 한번도 가본 적이 없는 남동부 독일의 소도시인 필스비부르크(Vilsbiburg) 시(市)의 지전류를 조사하였다. 공정을 기하기 위하여 시장과 경찰 입회 하에 조사가 시행되었고, 시 보건 담당 의사는 암으로 죽은 공식적인 사망자 명단을 폰 폴 씨에게 보여 주지 않고 자신의 서랍에 보관하고 있었다.
폰 폴 씨가 시 전체의 지전류 조사를 끝내고 나서, 과거 25-30년 동안의 암 환자 주소와 폰 폴 씨가 조사한 지전류 도를 대조한 결과, 폰 폴 씨가 표시한 지전류 선상에 한사람의 예외도 없이 암 환자 주소가 있었다. 필스비부르크 시는 당시에 565 채의 집과 900 세대, 총 인구는 3,300 명이었다. 폰 폴 씨가 지전류 조사를 시작한 날까지 공식적인 암 환자는 48명, 비공식 6 명 등, 총 54명의 암 환자가 발생하였는데, 32명은 남자, 22명은 여자 암 환자였다.
암 환자 기록은 아쉽게도 1918년 이전까지의 기록 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폰 폴 씨는 하루에 8-9시간 지전류를 기감봉을 사용하여 조사하였다. 그 결과는 시장, 경찰, 시 보건 담당 의사가 서명을 한 1929년 1월 29일자 보고서로 작성되었다. 폰 폴 씨가 이 도시를 선택한 이유는 인구가 많지 않고, 인구 이동이 적은 소도시이기 때문에 지전류의 영향이 크게 작용하기 때문이었다. 필스비부르크 시의 지전류 조사 결과뿐만 아니라 폰 폴 씨는 지전류의 영향이 강한 암을 일으키는 집(cancer house, Krebshaus)을 여러 곳에서의 기감 조사를 통하여 확신하고 있었다. 또한 암뿐만이 아니라 여러 질병도 지전류에 노출된 사람에게 발생한다고 주장하였다.
필자는 이 책을 읽고 정말로 공간의 선택이 중요할까 라는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필자의 집안은 5대 동안 가톨릭을 믿어 왔고, 어릴 때부터 프랑스 신부나 독일 신부들이 추나 버드나무 가지로 수맥을 찾아 주는 모습을 보았던 터라, 폰 폴 씨의 책을 읽고 나서 호기심이 발동하여 필자도 추나 나뭇가지로 인체에 악영향을 미치는 지전류를 기감 하는 방법을 배우고 싶었다.
공부에 쫓겨서 기감 하는 방법을 배울 기회가 없었으나 우연한 기회에 기감학(氣感學, Radiaesthesie) 전문가(Meister)들을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예민한 기감 능력을 필자가 가진 것을 확인을 하고 전공을 기감학 쪽으로 바꾸게 되었고, 평생 동안 기감학을 연구하여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폰 폴 씨가 살았던 1900 년도 초반은 기감학에 대한 개념과 기감 기술에 대한 학설이 제대로 정리가 되지 않은 시기였음에도 불구하고, 1910년대에 벌써 자신의 지전류 조사 기감 경험을 정리하여 자세한 기록으로 남겼다는 것에 대하여 기감학을 연구하고 있는 후학으로서 심심한 경의를 표하고 싶다.
어떤 학문 분야이던지 처음에는 불확실하고 유치하게 보이는 학설일지라도 자신의 경험, 주장 등을 정리하여 후학을 위하여 체계적인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 책은 영어로도 번역되어 출판되었으나 독일어를 읽을 줄 아는 정신 과학 학회 회원들은 독일어 원판을 읽는 것이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