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사의 묘 기감 조사

2022. 10. 15. 10:19땅의 기감 조사/정사의 묘 기감 조사

정사의 묘 기감 조사

 

 

2009.02.23. 17:00-18:00까지 조선 8대 명당이라고 알려진 정사의 묘를 기감 조사하였다.

(조선 8대 명당 출처: http://blog.daum.net/ansdufrhd/11840199)

 

날씨는 흐렸고, 바람이 조금 불었다.

필자는 오후 2 시에 부산을 출발하여 오후 5 시경의 저녁 무렵에 경북 예천군 지보면에 위치한 정사의 묘에 도착하였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천기는 100% 정도로 보통 정도의 기감 강도를 가진 것으로 기감되었다.

 

 

“정사(鄭賜)의 묘 = 부산시 양정동 화지산에 있는 정문도(鄭文道) 묘와 함께 양대 정묘(鄭墓)로 일컬어지는 명묘(名墓). 예천군 지보면 지보리(익장마을)에 있다.

 

정사(鄭賜)는 조선 초 예문관 직제학, 진주목사 등을 지냈다. 동래정씨 직제학공파 파조며, 다섯 아들 중 셋째 정난종(鄭蘭宗) 후손에서 13명의 정승이 난 것으로 유명하다. 정난종은 우찬성을 역임했으며, 그의 아들 정광필(鄭光弼)은 성종 때 영의정을 역임했다. 정광필의 외아들 정창연(鄭昌衍)은 광해군 때 좌의정을 했다.

 

(중략)

 

대제학과 좌의정을 역임한 정유길(鄭惟吉)은 정광필의 손자로 그의 자손에서 벼슬이 많이 배출되었다. 정광필의 큰손자 정광성이 형조판서, 작은손자 정광경이 이조판서를 했다. 증손대에 와서는 정광성의 아들 정태화(鄭太和)가 인종에서 효종대까지 6대에 걸쳐 영의정을 했다. 정치화(鄭致和)는 병자호란 때 봉림대군을 심양까지 호종하였으며 좌의정을 했다. 정광경의 아들 정지화(鄭知和)가 좌의정을 하여 동래정씨 집안에 3정승이 났다고 일컫는다. 풍양면 청곡리(靑谷里), 우망리(憂忘里)에 많이 세거하여 속칭 우망정씨(憂忘鄭氏)라 한다.

 

♦정사(鄭賜) = 1400(정종 2)∼1453(단종 1). 조선 초기의 문신. 본관은 동래(東萊). 아버지는 구령(龜齡)이고, 어머니는 박문로(朴文老)의 딸이다. 예천군 풍양면 청곡리 별실(別室) 마을 출신으로 1420년(세종 2)사마시에 합격한 뒤, 이어서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감찰 · 정언 · 검열을 역임하고 이조 · 예조 · 형조의 낭관을 지냈다. 1448년 예문관직제학으로 있으면서 경상도로 가서 일본으로부터 오는 단목(丹木) · 동 · 철 등을 수령하였다. 진주목사를 지내면서 고을을 잘 다스려 경상도 용궁의 완담향사(浣潭鄕祠)에 영의정 정광필(鄭光弼)등과 함께 봉안되었다. 찬성에 증직되었다."

(출처: http://blog.naver.com/zxcvbnm7997?Redirect=Log&logNo=10042817224)

 

 

정사의 묘 위치

 

 

 

정사의 묘 주소:  경북 예천군 지보면 지보리

 

 

 

 

 

(사진 출처: Google Earth)

 

 

C 가 정사의 묘이다.

정사의 묘 입구인 A 에서 B 로 이동하였고, D 는 예천 석문종택이다.

 

미세 에너지 기감 강도는 특별한 설명이 없는한 필자가 사진 찍으면서 서있는 곳의 미세 에너지 기감 강도이다.

 

미세 에너지의 기감 강도는 수맥의 기감 테스트를 참조하라.

 

 

A 지점에 근처에 위치한 석문 정선생 유허비 미세 에너지 기감 강도 70%

 

사진 오른쪽 뒤에 보이는 묘가 정사의 묘이다.

 

 

석문 정선생 유허비 정면 우측편 미세 에너지 기감 강도  70% 

 

 

사진 중앙에 있는 묘가 정사의 묘이다.

 

 

석문 정선생 유허비에서 정사의 묘 경계선 1의 미세 에너지 기감 강도  100%

 

 

 

2의  미세 에너지 기감 강도 100%

 

 

 

3의  미세 에너지 기감 강도 100%

 

 

 

4의 미세 에너지 기감 강도 100%

 

 

 

 

5의 미세 에너지 기감 강도 70%

 

 

 

3의 위치에서 정사의 묘로 접근한 위치의 미세 에너지 기감 강도 120%

 

 

 

4의 위치에서 정사의 묘로 접근한 위치의 미세 에너지 기감 강도 120%

 

 

 

5의 위치에서 정사의 묘로 접근한 위치의 미세 에너지 기감 강도 80%

 

 

 

3번에서 정사의 묘로 더 접근한 묘 좌측의 미세 에너지 기감 강도 140%

 

 

 

4번에서 정사의 묘로 더 접근한 묘의 중앙의 미세 에너지 기감 강도 150%

 

 

 

5번에서 정사의 묘로 더 접근한 묘의 우측의 미세 에너지 기감 강도 70%

 

 

 

정사의 묘 좌측의 미세 에너지 기감 강도 170%

 

 

 

정사의 묘 중앙의 미세 에너지 기감 강도 150%

 

 

 

정사의 묘 우측의 미세 에너지 기감 강도 50%

 

 

  

정사의 묘 제단과 비문의 미세 에너지 기감 강도 150%

 

 

 

정사의 묘 좌측 미세 에너지 기감 강도 200%

 

 

 

정사의 묘 중앙의 미세 에너지 기감 강도 200%

 

 

 

정사의 묘 우측 미세 에너지 기감 강도 100%

 

 

 

정사의 묘 가까운 뒷편 좌측의 미세 에너지 기감 강도 180%

 

 

 

정사의 묘 가까운 뒷편 중앙의 미세 에너지 기감 강도 80%

 

 

 

 

 

정사의 묘 가까운 뒷편 우측의 미세 에너지 기감 강도 50%

 

 

  

 

 

정사의 묘 먼 뒷편 좌측의 미세 에너지 기감 강도 125%

 

 

 

정사의 묘 먼 뒷편 중앙의 미세 에너지 기감 강도 90%

 

 

 

정사의 묘 먼 뒷편 우측의 미세 에너지 기감 강도 50%

 

 

 

 

 

정사의 묘 방향  -자북 방향이 아닌 남남서쪽을 향하고 있다.

 

 

 

 

200% 미세 에너지 기감 강도 위에 서 있는 필자

 

 

 

 

200% 미세 에너지 기감 강도 위에서  미세 에너지를 기감하고 있는 필자 

 

- 미세 에너지 기감 느낌이 따뜻하고 편안했다.

 

 

 

필자가 서있는 정사의 묘 우측 미세 에너지 기감 강도는 100%로 기감되었다.

 

 

 

 

정사의 묘 미세 에너지 기감 강도 그림

 

 

 

no scale

 

 

빨강색 200%

 

노랑색 150% 이상

녹색 100% 이상

 

 

정사의 묘는 정면에서 봤을 때 좌측이 우측보다 더 강한 미세 에너지 기감 강도를 나타내었다.

 

그 옛날 처음 이 자리를 잡아준 사람은 대단한 기감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이 묘자리를 정하고 나서 몇 백년이나 지난 현재까지도 미세 에너지 기감 강도 200%나 되는 자리를 찾았다는 것은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요하는 기감 조사를 행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왜 기감 강도가 200%인 미세 에너지 포인트 자리에 묘자리를 정해주지 않고 편심(偏心)이 되게 하였는가에 대한 설명은 쉽지 않다.

 

보통 묘에서 아래 방향으로 내려다봤을 때, 오른쪽이 할아버지가 묻히고 왼쪽이 할머니가 묻힌다. 남자가 평균 수명이 짧기 때문에 할아버지가 묻히고 난 후 할머니가 묻히는 것을 고려하여 자리를 잡아준 것이 아니라, 할아버지만 고려하여 좋은 자리를 의도적으로 잡아 주었을 가능성이 있다. 즉, 옛날 정사의 묘자리를 잡아준 기감 전문가가 부계(父系)의 발복(發福)만을 위한 묘자리를  의도적으로 정해줬을 가능성이 있다. 

 

아니면 할아버지 할머니 두 분의 자리는 봉분 왼쪽의 좋은 자리에 잡아주고 오른쪽으로 조금 이동하여 묘지 봉분을 크게 만들었을 가능성도 있다.  

 

그리고 또 다른 가능성은 묘자리를 정하고나서 6백여년이라는 긴 시간이 흐르면서 지진이나 단층 이동 등의 지각 변동에 의해 미세 에너지 포인트가 약간 이동하였을 수도 있다.

 

(기감 강도는 수맥의 유해 지기 기감 테스트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