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과 지옥
천국과 지옥
“천국 [天國, heaven]
요약
천상에 있다고 믿어지는 이상적인 세계를 가리키는 종교적인 관념
본문
현세 또는 지옥과 대비하여 쓰인다. 죽은 자가 가는 세계로서, 한편으로는 어두운 지하의 세계를 두고 말했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이와는 대조적으로 밝은 천상의 세계를 생각한 것이다. 북유럽 신화에서는 신 오딘의 궁전임과 아울러 많은 영웅들이 살고 있는 ‘발할라(Valhalla)’이며, 고대 멕시코에서는 귀족은 ‘태양의 나라’에 다시 태어난다고 여겼다. 여기에는 이미 사후의 생명의 단순한 존속을 초월하여 생전의 사회적 지위라든가 그 사회에 이바지한 공헌에 대한 보수(報酬)라는 사고방식이 사후의 운명으로 연결지어진다.
이윽고 거기에 윤리성이 가해지면서 천국과 지옥이라는 것이 보다 더 확실히 갈라진다. 고대 그리스의 ‘엘리시온’은, 사후에 선인(善人)들이 사는 곳으로 생각되었으며, 고대 이집트의 종교나 조로아스터교에서는 죽은 자는 자신의 생전의 행위에 따라 심판이 내려져서 천국과 지옥 어느 쪽으로 가게 되는가가 정해졌다.
종교적인 교의의 지적(知的)인 전개는, 왜 이 세상에서는 악인이 번영하고 선인이 괴로움을 당하는가 하는 불합리한 물음에 대하여, 천국 및 지옥의 관념을 제시함으로써 하나의 답을 부여한 셈이 된다. 이 지적인 전개가 다시 발전하면 그리스도교나 이슬람교에서의 천국, 불교의 정토신앙(淨土信仰)의 극락에서 볼 수 있듯이 거기에 들어가는 자격으로서 윤리성도 필요하지만 그보다는 ‘믿음’을 중요한 조건으로 삼았다.
그리스도교에서는 참된 신자가 죽은 후 그 영혼이 가서 영원한 축복을 누리는 장소가 천국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반드시 사후의 세계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신의 지배가 완전히 이루어지는 곳을 말하며, 현세에도, 또 인간의 마음 속에도 존재한다고 생각되었다. 이러한 의미에서 천국은 비관적인 정세에 처한 구약시대 유대인의 신앙에 정치적 대망(待望:메시아의 대망)으로서 나타났으며, 나아가 그것은 예수의 교훈의 중심주제가 되어 그리스도교의 근본신앙이 되었다. 예수의 선교 내용은 ‘신의 나라’의 복음이었지만, 그 실현을 현세적으로 보는가 종말론적으로 보는가에 따라 의견이 갈렸다. 근대에 있어서 A.슈바이처는 이를 종말론적으로 해석하고 있다.
죽은 자의 나라로서의 천국의 관념은 고대 그리스 ·인도 ·이슬람 등의 여러 신앙에서 볼 수 있는데, 이 경우는 보통 지옥의 관념으로 되어 있다. 천국은 지옥과 달라서 사자가 신이 되든가, 아니면 신과 함께 사는 곳으로 간주되었다. 여러 가지 빛깔의 꽃이 피고, 맑고 깨끗한 물이 흐르며, 바람은 시원하게 불고, 황홀한 음악이 들려오며, 맛있는 음식이 풍성한 감각적인 낙원, 즉 이상향(理想鄕)으로서 흔히 묘사되었다.
혹서(酷暑)지대에서는 ‘서늘한 바람’, 건조지대에서는 ‘맑고 정한 물’ 등이 강조되었으며, 또 이슬람교에서는 미녀들이 시중을 든다는 등 그 지역의 풍토성이나 사회성이 반영되고 있다. 천국은 이와 같이 신들이 살고 있는 곳, 사후의 생명이 가는 곳, 그도 영웅이나 선인이나 신자의 세계라는 점에서 인간의 죽음의 문제 및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방법의 문제와 관련된다. 또 천국을 내세에서 구하지 않고 인간의 이상적인 세계로서 현세에서의 시간적인 미래에, 혹은 마음의 내부에서 구하는 사고방식도 있는데, 이 경우도 현세에서의 생활방식과 깊은 관련이 있으므로, 종교사상에서 천국관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일부 성공회(聖公會)에서는 천국이란 ‘신의 삶에 끝없이 동참하는 것’이라고 재정의를 내리기도 했다.
(출처: NAVER 백과사전)
천국
“천국(天國, 하늘나라)은 하늘 또는 그 이상으로 끝없이 확장되는 천상의 영역을 의미한다. 천국이라는 단어는 여러 종교나 영적 철학에서 등장하는 말로, 일반적으로 신성, 선량, 신앙심 등의 기준에 만족한 사람들에게 허락되는 가장 성스러운 곳을 의미한다.
천당(天堂)과 천국
천당은 불교에서 파생된 용어로서 죽어서 가는 복된 세계를 가리킨다. 기독교에서도 죽어서 가는 복된 세계의 개념이 있는데, 복음서에서는 ‘낙원’ 또는 ‘아브라함의 품’이라고 표현되었다. 그것들을 오늘날 기독교에서도 천당이라는 용어로 종종 부른다. 엄밀히 말해 성서에서 사용된 천국이라는 용어는 천당을 포함하는 더 넓은 개념이다. 천국은 내세 뿐만 아니라 현세 까지 그 영역으로 삼고 있다. 그러나 일반 신도들 사이에서는 천국과 낙원이 구별없이 쓰이는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출처: 위키벡과)
“천국 (종교) [天國, heaven]
하느님, 신 또는 다른 영적인 존재들이 거주하는 장소, 또는 사후나 최후의 심판 이후에 구원받은 자, 선택된 자, 축복받은 자 들의 거처나 그 존재 상태.
천국 /천사가 요한에게 보여주는 천국의 예루살렘, 〈Apocalypse of St. John〉(1020경) 사본에서
이 말은 지상(인간들이 거주하는 곳)이나 지하세계(저주받은 자들이 거주하는 곳)와 대조되는 천상의 영역을 의미하는데, 지하세계는 흔히 지옥으로 불린다. 천상의 공간인 천국은 선과 성스러움의 특질인 빛을 발하거나 상징하는 태양·달·별들이 위치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빛은 지하세계와 악의 성질인 어둠에 반대된다.
천국의 개념은 세계 여러 종교에서 다양하게 해석되어 왔다. 〈구약성서〉에서 천국은 이스라엘인들의 하느님인 야훼가 거하시는 곳으로 생각되었는데, 그 이유는 하느님은 천국의 창조자이자 천상의 영역을 초월하기 때문이다. BC 3~2세기에 이스라엘인들은 대개 천국을 죽은 자들의 거처로 생각하지 않았으며, 선하거나 악하거나 모든 사람은 고통과 기쁨, 벌과 보상이 없는 지하세계 스올에서 잔다고 믿었다. 그러나 후기 유대교에서 천국은 하느님과 함께 살기 위해 장차 부활할 의인들의 사후 목적지로 생각되었다.
이러한 유대교의 모태에서 나온 그리스도교는 천국을 그리스도의 진정한 신자와 추종자들의 목적지로 생각했다. 최근의 몇몇 해석에 따르면, 천국은 선택되거나 구원받은 자들이 사후에 가는 장소라기보다는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삶의 상태를 상징한다. 유대교와 그리스도교에 영향을 받은 이슬람교는 천국을 알라(신)의 뜻에 따라 신실한 이슬람교도가 가는 기쁨과 축복의 장소로 보았다. 이슬람교 경전인 〈코란〉은 모든 사람이 천국에 이르기 전에 지옥을 통과하거나, 지나가야 한다고 언급한다.
동방종교에서 천국의 개념은 매우 다채로워서 어떤 것은 서방종교와 유사하고, 어떤 것은 매우 다르다. 중국인들은 하늘[天]이 인간의 도덕법과 자연의 물리적인 법칙의 수호자로 신적 의지와 동일하다고 생각했다. 대승불교(Mahāyāna:큰 수레)의 정토종(淨土宗)에서 천국은 서방정토(西方淨土)를 가리키며, 모든 살아 있는 창조물을 구원하기로 맹세한 붓다('깨우친 자')인 아미타불의 구원하는 은총을 받아들인 사람들이 가는 곳으로 여겨졌다.
정통 불교, 특히 소승불교(Theravāda:상좌부[上座部])에 속한 사람들은 천국을 말하지 않고, 욕망이 소멸된 존재상태인 니르바나(悅盤)를 말한다. 힌두교에서는 각양각색의 천국개념이 있다. 예를 들어 비슈누('보존자')의 숭배자들은 고통·두려움·죽음이 없는 천국에 가서 비슈누의 영원한 빛의 영광 안에서 살 수 있다고 믿는다.“
(출처: 다음 백과사전, 검색어 - 천국)
하느님의 나라
“하느님의 나라(Βασιλεία του Θεου 바실레이아 투 테우)또는 천국(바실레이아 투 우라논)은 성서에 기반한 유대교와 기독교에서 발견되는 신학적 개념이며,앞으로 다가올 그리고 현재 자라고 있는 미래적이고 현재적인 하느님의 다스림을 뜻한다. 신약성서에선 하느님나라를 천국, 아버지의 나라, 그분의 나라라고도 표현한다.
하느님의 나라의 뜻
하느님 나라 또는 천국은 앞으로 다가올 그리고 현재 자라고 있는 미래적이고 현재적인 하느님의 다스림을 뜻한다. 마태오 복음서에서는 하느님 나라를 천국(하늘나라)이라고 부르는데, 그 이유는 마태복음서의 저자와 독자 모두 유대인들이라 하느님을 함부로 부르면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즉, 하느님 나라와 천국은 같은 말이다. 물론 이방인을 대상으로 쓰여진 복음서로 알려진 루가 복음서에서는 하느님의 나라로 부르고 있다. 하느님의 나라는 구약성서와 신약성서 전반에서 발견할 수 있는 개념이어서, 예수는 공생애동안 하느님의 나라의 도래를 핵심으로 하는 설교를 하였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하느님 나라를 외세로부터 해방된 민족주의 국가로 이해했기 때문에, 하느님 나라를 하느님의 정의와 평화실천으로 해석하던 그리스도는 거부되었다.
역사적 배경
기원전부터 이스라엘 민중 가운데에는 이미 하느님 나라의 개념이 있었다. 무엇보다도 히브리 사상의 근원이 되는 구약성서에서 그 표현을 발견할 수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역대기 상 29장 10~12절, 다니엘서 4장 3절 등이다. 이스라엘 민족에게 있어서 하느님의 나라는 주로 하느님의 특별한 경영 대상, 그 중에서도 이스라엘 국가를 지칭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이스라엘 국가가 패망한 이후로 하느님의 나라는 매우 좁은 의미로서 ‘회복될 이상적인 이스라엘 국가’의 의미로도 쓰이기 시작한다. 이스라엘 민중이 그리던 그 이상 국가의 모습은 구약성서의 이사야서 11장 1~9절에 묘사된 것이 대표적이다:
1. 이새의 그루터기에서 햇순이 나오고 그 뿌리에서 새싹이 돋아난다.
2. 야훼의 영이 그 위에 내린다. 지혜와 슬기를 주는 영, 경륜과 용기를 주는 영, 야훼를 알게 하고 그를 두려워하게 하는 영이 내린다.
3. 그는 야훼를 두려워하는 것으로 기쁨을 삼아 겉만 보고 재판하지 아니하고 말만 듣고 시비를 가리지 아니하리라.
4. 가난한 자들의 재판을 정당하게 해 주고 흙에 묻혀 사는 천민의 시비를 바로 가려 주리라. 그의 말은 망치가 되어 잔인한 자를 치고 그의 입김은 무도한 자를 죽이리라.
5. 그는 정의로 허리를 동이고 성실로 띠를 띠리라.
6. 늑대가 새끼양과 어울리고 표범이 숫염소와 함께 뒹굴며 새끼사자와 송아지가 함께 풀을 뜯으리니 어린아이가 그들을 몰고 다니리라.
7. 암소와 곰이 친구가 되어 그 새끼들이 함께 뒹굴고 사자가 소처럼 여물을 먹으리라.
8. 젖먹이가 살모사의 굴에서 장난하고 젖뗀 어린아기가 독사의 굴에 겁없이 손을 넣으리라.
9. 나의 거룩한 산 어디를 가나 서로 해치거나 죽이는 일이 다시는 없으리라. 바다에 물이 넘실거리듯 땅에는 야훼를 아는 지식이 차고 넘치리라.
위에서 언급되는 ‘이새의 그루터기’는 다윗 왕의 후손을 나타내는 말이다(다윗의 아버지 이름이 이새였다). 그래서 이스라엘 민족은 다윗의 후손이 나타나 이스라엘을 압제하는 세력을 물리치고 왕위에 올라 하느님의 뜻대로 다스리는 복지낙토를 건설할 것이라 바라보았고, 이러한 좁은 의미에서의 하느님의 나라라는 표현을 종종 사용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완수할 자를 메시아라고 불렀는데, 직역하면 ‘기름 부음을 받은 자’로서 이는 이스라엘에서 왕위에 오를 사람에게 기름을 부었던 전통과 관련이 있다. 그래서 하느님의 나라는 메시아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으며, 무엇보다도 하느님의 나라 구체적 모습은 메시아가 옴으로써 수립될 것으로 여겨졌다.
기독교에서의 해석
기독교에서의 하느님의 나라는 위에서 서술한 바 유대교에서 발견되는 하느님 나라 개념의 연장선상에 있다. 차이점이 있다면 가장 큰 것은 기독교에서는 예수의 오심으로 하느님나라 즉, 하느님의 다스림이 임했다고 해석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 내에서도 종파에 따라 또는 신학사조에 따라 하느님 나라에 대한 구체적인 이해에 차이를 보이고 있다.
개혁주의 시각
개혁주의는 위에서 서술된 광의에서의 하느님 나라와 협의에서의 하느님 나라를 다 수용하되, 혼동을 피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용어를 사용한다.
• 권능의 왕국(Kingdom of Power): 광의에서의 하느님 나라를 가리킨다. 하느님의 통치권이 미치는 곳, 즉 우주 뿐만 아니라 내세의 모든 영역을 가리키는 말이다. 전 영역에서 하느님의 통치권은 절대적 대권을 행사한다는 의미에서 '권능의 왕국'이라고 표현한다.
• 은혜의 왕국(Kingdom of Grace): 협의에서의 하느님 나라를 가리킨다. 즉 권능의 왕국 내에서도 하느님의 특별한 경영 대상인 하느님의 백성들로 구성되는 사회를 지칭한다. 그러므로 은혜의 왕국의 영역은 이 땅 뿐만 아니라 내세에 까지 뻗쳐 있지만 그 주 무대는 지상이 된다. 하느님의 백성들은 본래 죄인들이었으나 하느님의 은혜로 인해 죄사함을 받고 하느님의 백성이 되었다는 의미에서 은혜의 왕국이라는 말을 쓴다. 이 은혜의 왕국을 가장 뚜렷하게 증시하는 것이 교회이다. 개혁주의 시각은 이 은혜의 왕국이 역사의 가도 위에서 발전해 나감에 따라 궁극적으로 다다를 정점이 있는데, 그것이 이루어지는 날이 예수의 재림 때이며, 그 완성된 모습을 묘사한 것이 앞서 인용된 이사야서 11장 1~9절의 내용이라고 본다.
• 영광의 왕국(Kingdom of Glory): 위에서 서술했듯이 예수의 재림과 함께 완성될 은혜의 왕국을 지칭하는 말이다.
개혁주의는 이상의 모든 왕권을 부활한 예수가 현재 행사하고 있다고 본다.
이상을 살펴볼 때, 과거 전통적인 유대교적 하느님 나라와의 차이는 개혁주의 시각은 첫째, 이스라엘 국가라는 특정 민족을 중심으로 한 것이 아닌 전 세계적이며, 둘째, 메시아의 도래와 함께 바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경과 기간이 있어 메시아의 재림과 함께 완성된다고 보는 것이며, 셋째, 외부적인 규제가 아닌 하느님의 말씀과 성령을 통한 영혼의 다스림이라는 것이며, 넷째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정신 속에서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외부적 실증을 드러내는 현실적인 통치권으로 이해한다는 것이다.
또한 로마 가톨릭과 개혁주의의 차이는 로마 가톨릭의 경우 예수의 왕권 행사의 지상 대리자로 교황을 인정하지만 개혁주의는 대리자를 부인한다는 것이다. 이는 다른 개신교 종파들과 성공회교회도 마찬가지이다. 이는신약성서의 마태오 복음서 16장 19절에 대한 해석에 근거한다.
일부 신학자들의 해석
일부 신학자들은 하느님 나라라는 표현이 공간적인 것으로 그러니까 죽어서 가는 내세로 잘못 해석될 수 있다고 보기때문에, 하느님의 다스림이나 하느님의 질서로 표현한다. 이들에게는 하느님의 나라보다는 하느님의 다스림이나 하느님의 질서가 하느님의 나라의 뜻을 잘 표현한 말이기 때문이다. 여성신학자들도 이 표현을 지지하는데, 하느님의 나라(Kingdom)가 남성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원로 장로교 신학자 김영재 전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교수도 하느님나라는 하느님의 다스림을 뜻하는데도 대다수 기독교인들이 죽어서 가는 내세로 오해함을 지적한 바 있다.
(출처: 위키 백과, 검색어 하느님의 나라)
“낙원 (종교) [樂園, paradise]
종교에서 말하는 궁극적인 행복과 기쁨이 있는 곳.
이 말은 아담과 이브가 쫓겨나기 전에 살았던 에덴 동산과 같은 뜻으로 자주 사용된다. 지상에서의 낙원은 하늘과 땅이 매우 가깝고 실제로 닿아 있을 때, 또는 인간과 신이 자유롭고 행복한 교제를 나눌 때 이루어진다고 생각되기도 한다(→ 지상낙원). 또한 많은 종교들은 고통이 없고 육체적인 욕망이 완전히 채워지는 땅, 죽음을 극복한 완전한 삶에 대한 개념을 가지고 있다.
고등종교가 말하는 태고적 지상낙원은 '생명의 정원'(유대교·그리스도교·이슬람교)에서부터 인간존재의 윤회단계 처음에 있다는 '황금기의 인간사회'(불교·힌두교)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지복의 최종상태도 죽은 뒤 천상에서의 삶(이슬람교·그리스도교), 신과의 결합(힌두교), 영원한 평정과 불변의 상태(불교) 등 여러 가지로 설명된다.
그리스도교에서 천국은 죽은 의인들이 신의 영광스런 임재 안에 안식하는 곳으로 묘사되고 이슬람교에서는 축복받은 사람들이 최대의 감각적·영적인 행복을 경험하는 쾌락의 동산이라고 본다.
(출처: 다음 백과사전, 검색어 - 낙원)
“지옥 (종교) [地獄, hell]
악령이나 죽은 뒤에 형벌을 받도록 저주받은 영혼들이 거주하는 장소나 존재상태.
지옥 /〈지옥의 문〉, Henry의 〈Psalter〉에 실린 채식화
감추다' 또는 '덮다'라는 뜻의 앵글로색슨어에서 유래한 이 용어는 지하세계의 뜨거운 지역을 가리키는데, 일부 종교에서는 지하세계를 차갑고 어두운 곳으로 믿는다.
선한 사람들과 악한 사람들, 혹은 산 사람들과 죽은 사람들을 구분하는 존재상태나 장소가 있다는 생각은 대부분의 세계 종교들에서 찾아볼 수 있다. 고대인과 원시인의 종교에서 죽은 사람이 거주하는 장소는 영혼의 종착지이다. 어두운 지하세계나 외딴 섬(그리스 하데스), 사람들의 영혼들이 형벌을 당하는 지하세계의 깊은 심연(그리스 타르타로스), 선하거나 악한 영혼들이 끊임없는 갈증을 느끼는 유령들로 지내는 지하세계의 어두운 곳(고대 이스라엘인의 셰올), 차갑고 어두운 지하세계(노르웨이인의 니플헤임 또는 헬), 죽은 사람들의 영혼이 거하는 천상의 장소(푸에블로족 인디언들이 죽으면 즉시 구름이 되어 비의 전달자로 지낸다고 믿는 장소), 영혼이 쇠잔해지다가 결국 소멸하는 어두운 장소(수렵생활을 하던 북아메리카 인디언들이 죽은 뒤 가게 된다고 믿는 장소)이다.
지옥은 최후 심판이 끝난 뒤 저주받은 사람들이 최종적으로 거주하게 될 장소라는 견해는 조로아스터교·유대교·그리스도교·이슬람교 등 서양의 예언종교들이 견지하고 있다. BC 6세기 이란의 예언자이자 개혁자 자라투스트라가 세운 조로아스터교는 영혼이 죽으면 심판을 받기 위해 3일 밤을 기다리다가 4일째 되는 날에 '보응(報應)의 다리'로 가서 생전의 행위들을 평가받는다.
선행이 악행보다 많은 영혼은 점점 넓어지는 보응의 다리를 건너 하늘로 가며, 선행보다 악행이 더 많은 영혼은 점점 좁아지는 다리를 건너다가 결국 모든 것을 얼어붙게 하고 악취가 나는 지옥에 떨어져 부활의 날까지 고통과 징벌을 겪는다. 선행과 악행이 균형을 이루는 사람들에게는 하메스타간('잡다한 사람들의 장소')이 준비되어 있으며, 이곳에서 그 영혼들은 더위와 추위를 번갈아가며 고통받는다. 하메스타간은 그리스도교의 연옥 개념과 비슷하다(→ 연옥).
헬레니즘 시대를 거치면서 유대교는 지옥을 '게헨나', 즉 악인들이 징벌을 받는 무시무시한 지역으로 보았다. 유대교의 지옥 개념을 토대로 삼은 그리스도교는 지옥이 죄된 생활을 한 사람들과 하느님을 부인한 사람들에게 내린 영원한 저주의 장소, 마귀와 그 휘하의 악한 천사들이 지배하는 불타오르는 지역이라고 보았다.
알렉산드리아의 오리게네스와 니사의 그레고리우스 같은 초기 그리스도교 사상가들은 지옥이 영원하다는 견해와 지옥이 뜨겁게 타오르는 내세(來世)의 장소라는 문자적인 견해에 의문을 제기했다. 그러나 대다수 그리스도교 사상가들은 지옥이 죄를 회개하지 않고 죽은 사람들이 형벌을 받는 상태라고 가르쳤다. 어떤 현대 신학자들은 문자적인 견해에 의문을 제기하면서도 지옥은 적어도 악인과 선인이 구별되어 있는 상태라고 주장한다(→ 그리스도교).
조로아스터교·유대교·그리스도교에 토대를 두고 지옥, 즉 '자한남'개념을 발전시킨 이슬람교에서 지옥은 모든 영혼이 낙원으로 가기 위해서 반드시 건너야 할 좁은 다리 밑에 있는 뜨겁게 타오르는 거대한 분화구로 묘사된다. 저주받는 사람들은 다리에서 떨어져 알라(신)가 뜻을 바꾸기 전까지 고통을 겪는다.
힌두교에서 지옥은 영혼의 도정 가운데 한 단계에 지나지 않는다. 모든 행위에는 결과가 따르며 환생(還生)이 일어나기 때문에, 저승 밑에 있는 21곳의 지옥들 중 한 곳 또는 여러 곳에서 보낸 시간은 궁극적인 의미가 없다. 결국 영혼은 '세계(또는 궁극)의 영혼'에게 돌아갈 것이며, 그렇게 될 때까지 윤회의 인생을 보낸다. 자이나교에서 지옥('브후미스')은 죄인들이 생전에 쌓았던 악이 모두 사라질 때까지 마귀들에게 고통을 당하는 곳이다.
중국에서 도교는 사후의 형벌과 속죄가 일어나는 장소에 관한 불교의 관념을 받아들여 이를 수정했다. 일반인들의 지옥관은 〈서유기 西遊記〉·〈악비전 岳飛傳〉 같은 허구적인 지하세계 여행담과, 지장보살(地藏菩薩)이 지하세계에서 벌인 자비의 여행기들을 전하는 불교 경전에 근거한다. 그 내용에 따르면, 사람은 죽은 직후에 사자들에게 이끌려 성벽과 해자(垓字)의 신 성황(城隍) 앞으로 가며, 성황은 죽은 사람들에게 일종의 예비 증언의 기회를 준다. 덕을 많이 쌓은 사람들은 불교의 낙원들 가운데 한 곳, 즉 도교의 불멸자들이 살고 있는 쿤룬 산으로 곧바로 가거나, 환생을 위해 지옥의 10번째 궁전으로 갈 수 있다.
죄인들은 49일 뒤에 메루 산 기슭에 자리잡고 있는 지옥으로 내려온다. 10왕전은 주요도시 펑두에 자리잡고 있다. 죄인들은 정해진 기간 동안 한 곳 또는 여러 곳의 지옥에서 지내는데, 그 기간은 자비로운 지장(보살)의 중재로 조정될 수 있다. 죽은 사람들은 환생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망각(忘却)의 국을 마시고 윤회(輪廻)의 바퀴에 오르는데, 이 바퀴는 각 사람을 다음 차례의 삶으로 데려다준다(다른 이야기들에 따르면, 죽은 사람들은 고통의 다리에서 내던져져 강물에 휩쓸리며, 강물을 타고 새로운 목적지로 간다고 함).
불교는 지옥이 모든 생물이 윤회하는 육도(六道:하늘·인간·아수라·축생·아귀·지옥)의 가장 밑바닥에 위치한다고 가르친다. 구사론(俱舍論)이 설명하는 바에 따르면 8대 지옥이 있다고 한다. 그것은 ① 살생의 죄를 진 사람이 가는 지옥인 등활(等活), ② 살생·절도의 죄를 진 자가 가는 흑승(黑繩), ③ 사음의 죄에 적용되는 중합(衆合), ④ 살생·절도·사음·음주의 죄에 적용되는 규환(叫喚), ⑤ 규환에 해당하는 죄에 추가하여 헛된 말을 퍼뜨린 죄까지 추가된 경우에는 대규환(大叫喚)에 적용되고, ⑥ 위의 ④·⑤에 추가하여 사견(邪見)의 죄를 저지른 경우에는 초열(焦熱)에 해당되고, ⑦ 위의 ④·⑤·⑥에 추가하여 니(尼)를 범한 경우에는 대초열(大焦熱)에 해당하며, ⑧ 부모를 살해하거나 부처에게 상처를 입힌 자가 가는 아비(阿鼻)가 있는데, 무간(無間)이라고도 한다. 각각의 지옥에는 다시 16개의 지옥이 있으므로 크고 작은 지옥을 모두 합치면 136개의 지옥이 있다. 그밖에 8대 지옥 이외에 8한(八寒) 지옥이 있어 중생이 혹독한 추위에 시달리게 한다.
고대 인도의 베다에 의하면 지옥에 있으면서 죽은 사람을 심판하는 사자(死者)의 왕은 야마라고 한다. 이 야마의 한역(漢譯)은 염마(閻魔)가 되는데 불교와 함께 중국에 전해져 전적으로 중국적인 존재가 되었다. 명계에 있는 10인의 왕 중 하나인 염마는 신앙의 대상이 되었다. 지옥의 개념은 원시불교의 시대에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이에 비하여 정토(淨土)의 개념은 불교가 중국에 전해지고 난 이후 생겨났다.“
(출처: 다음 백과사전)
“지옥 [地獄, hell]
요약
인간이 자기의 악업(惡業) 또는 죄과로, 죽은 뒤에 영혼이 간다는 견디기 힘든 고통으로 가득 찬 형벌의 장소.
본문
뇌옥(牢獄)·명부(冥府)·명계(冥界)·음부(陰府)·황천(黃泉) 등으로도 불린다. 산스크리트에서 유래한 말로 내락가(捺落迦)·나락(奈落)으로 음사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에 해당하는 것은 여러 종교와 민족을 통하여 널리 발견된다.영어의 hell, 독일어의 Hölle, 프랑스어의 enfer, 이탈리아어의 inferno 등이 지옥에 해당되는 말이다. 지옥을 가리키는 말로 의역한 산스크리트의 '나라카'는 원래 '싫은 것' '고통스러운 것'을 뜻하는 단어이다.
그러나 인간이 사후에 가는 곳으로 원시민족이 설정한 타계(他界)의 관념은 반드시 고통스러운 곳만은 아니고, 처음에는 새로운 생활이 시작되는 재생 장소로 생각되었다. 그 재생의 토지를 심산이나 사막 또는 절해의 고도로 생각하는 원시민족도 있다.지옥이 있는 지하의 세계는 필연적으로 암흑의 관념과 연결되어 있으며, 암흑은 광명의 반대개념이기 때문에 지하의 암흑은 고계(苦界)의 연상을 낳고 광명세계인 천상의 낙토(樂土)와 대비되어 지하는 악인이 가는 곳으로 생각되었다.“
(출처: NAVER 백과사전)
“악마
요약
불교에서 불도수행을 방해하는 사신(邪神), 또는 사람에게 재앙을 내리거나 나쁜 길로 유혹하는 마물을 가리키는 말.
원어명 mara
본문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귀신’이라는 뜻으로 ‘마(魔)’와 같은 뜻이나 오늘날에는 주로 서양의 ‘데블(devil)’이란 뜻으로 쓰이고 있다. 데블은 소문자로 쓰는 경우와 대문자로 쓰는(Devil) 경우가 있다. 전자는 초자연의 힘을 가진 정(精) 또는 영(靈)으로 종류가 많은데, 한국에서 흔히 말하는 귀신이나 마귀도 이에 속한다. 소문자인 데블은 ‘데몬(demon)’이라고도 불리는데, 지역이나 민족에 따라 여러 가지 종교적 숭배나 속신(俗信) ·민화(民話)에 나타나며, 몽마(夢魔)나 흡혈귀(吸血鬼) ·마녀 등도 이 종류에 속한다.
이들은 중세 이래 귀신연구나 악마연구의 대상이 되어 왔다. 데몬은 그리스어의 다이몬(신 ·신성)에서 온 것으로 어원인 그리스어에는 악마 외에 선마(善魔)도 포함되었으나 그리스도교 시대 이후에는 악마라는 뜻으로만 쓰고 있다. 대문자로 쓰는 경우에는 그리스도교의 사탄(Satan)과 같은데, 헤브라이어의 ‘적(敵)’을 뜻한다. 사탄은 ‘루시퍼’라는 이름의 대천사(大天使)였는데, 신이 부여한 시련을 견디어내지 못하고 인간세계에 떨어졌기 때문에 ‘타락한 천사’라고 표현한다.
가톨릭에서는 ‘악의 천사 사탄’이라고 불러 ‘착한 천사 미카엘’과 구별하고 있다. 프로테스탄트도 역시 사탄은 천사와는 반대되는 개념으로 이해되는데, 이 사탄은 악으로써 선을 파괴하고 신의 영광에 상처를 주므로 신과 인간에게는 공통된 적으로 보고 있다. 사탄은 모습을 자유로이 바꾸는데, 구약성서의 《창세기》에서는 뱀으로 모습을 바꾸어 하와(이브)에게 금단의 열매를 먹게 한다. 괴테의 《파우스트》에 나오는 악마 메피스토펠레스는, 독일에서는 악마가 젊은 귀족의 모습으로 나타난다는 생각에 입각하여 설정된 것이다. 정체는 짐승의 몸이고 산양의 뿔과 갈라진 발톱과 박쥐의 날개를 가진 것으로 믿어지고 있다.“
(출처: NAVER 백과사전)
“악마 (종교) [惡魔, devil]
(그리스어로 '중상모략하는 자', '고발자'라는 뜻의 diabolos에서 유래)
사악한 정령이나 힘.
악마라는 단어는 작은 악령들을 일컬을 때도 있지만 대개는 사악한 마귀들의 우두머리를 가리키며, 세계 여러 종교에서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서양의 유일신교에서 악마는 교만에 빠져 유일신의 자리를 빼앗으려고 애쓰는 타락한 천사로 간주된다. 유대교와 그 이후의 그리스도교에서는 악마를 '사탄'이라고 불렀다(→ 선과 악).
〈구약성서〉에서 사탄은 〈욥기〉 1~2장에서 볼 수 있듯이 야훼 법정의 고발자로 등장하지만, 신의 적대자로 간주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구약성서〉 이후 시대의 유대교와 그리스도교에서 사탄은 '악마들의 우두머리'로 불리게 되었고, 〈마태오의 복음서〉 12장 24~27절의 베엘제붑(파리떼의 왕, '똥의 왕'이라는 뜻의 베엘제불로 인용되기도 함)과 루시퍼(타락한 빛의 천사) 등의 다양한 이름을 갖게 되었다.
그리스도교 신학에서 악마가 맡은 역할은 주로 인간을 유혹하여 생명과 구원의 길을 거부하고 죽음과 파멸의 길을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다. 자신의 교만 때문에 하늘에서 떨어진 천사들의 우두머리인 사탄은 그리스도교의 사상·전설·성상에서 하느님의 천사들의 우두머리인 대천사장 미카엘의 주요적수로 등장한다. 한편 이슬람교 신학에서도 악마의 이름인 이블리스가 자주 언급되고 있는데, 때로는 앗-샤이탄('악령')이나 아두브 알라('신의 적')로 부르기도 한다.
이슬람교 경전인 〈코란〉에서 이블리스는 세계창조에 관한 이야기에 처음 등장하는데, 천사들 중에서 이블리스만이 최초의 인간인 아담에게 절을 하라는 신의 명령을 거부해 신의 저주를 받는다. 그는 최후의 심판날에 벌을 받게 되어 있지만, 그때까지는 불신자들을 유혹할 수 있는 권능을 부여받았다(그러나 진정한 신자는 유혹할 수 없음). 이블리스는 에덴 동산에서 아담과 이브를 타락시키는 유혹자로 다시 등장한다.
이슬람교 신학에서 이블리스는 '진'(Jinn:천사로서 착한 일과 나쁜 일을 모두 할 수 있는 영적인 피조물) 또는 '진'들의 지도자였던 천사로 묘사된다. 이블리스가 저지른 교만과 불복종의 죄의 문제는 수피파 전승에서 특히 중요시되며, 이블리스는 오직 신에게만 복종하는 진정한 일신론자로 묘사된다.
악마는 일부 혼합종교에서도 중요한 존재였다. 영지주의에서는 악마를 데미우르고스('창조자')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았고, 마니교에서는 주로 '어둠의 왕'이라고 불렀다. 악마는 커다란 악의 힘으로서 종교적·세속적 문학과 예술에 많이 등장했다. 인류 역사의 여러 시대에 걸쳐 나타난 악마 숭배는 기존의 종교 제도에 만족하지 못하는 일부 사람들에게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되며, 따라서 악령을 추방하는 의식은 기존의 종교제도에서 시행되는 경우가 많다.“
(출처 DAUM 백과사전)
“사탄 (그리스도교·유대교) [Satan]
유대교와 그리스도교에서 악한 영의 왕이며 하느님의 대적자.
사탄이라는 단어는 〈구약성서〉에서 '대적자'를 뜻하는 히브리 단어의 한글 음역이다. 주로 〈욥기〉에서 대적자가 '하느님의 아들들'과 함께 하늘나라의 궁정에 등장한다. 그의 직무는(그 당시의 페르시아 관리처럼) 지상을 배회하면서 왕에게 불리하게 보고할 행위나 사람을 찾아내는 일이다. 따라서 지상을 두루 다니며 모든 선한 사람에게 용기를 주는 '주님의 눈'과는 정반대의 역할을 했다. 사탄은 사심이 없는 인간의 선행에 대해 냉소적이고, 하느님의 권위와 통제 밑에서 또 하느님이 정하는 한계 안에서 이를 시험하도록 허락받았다.
〈신약성서〉에서는 그리스어 음역인 '사타나스'(Satanas)가 쓰여지며, 영어 번역에서는 '사탄'(Satan)으로 나온다. 그는 악한 영의 왕이며, 본래부터 하느님과 그리스도의 원수로 빛의 천사인 체 가장하는 자로 표현된다. 그는 사람에게 들어갈 수 있고 그를 통해 행동할 수 있으며, 따라서 사람은 그의 행동이나 태도 때문에 사탄이라 불릴 수도 있다. 자기 밑에 있는 귀신을 통해 사탄은 사람의 몸을 점유하여 그들을 괴롭히거나 병들게 할 수 있다.
그에게 죄인들이 넘겨주어지는 것은 육체가 멸망함으로써 영이 구원을 얻도록 하기 위함이다. 70명의 제자가 전도하는 동안 귀신들이 그들에게 굴복했던 일이 있은 후 예수는 사탄이 번갯불처럼 하늘로부터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루가 10:18). 〈요한의 묵시록〉에 나오는 환상에 의하면 승천한 그리스도가 땅 위에서 통치하려고 하늘로부터 재림할 때 사탄은 1,000년 동안 큰 쇠사슬에 묶였다가 잠시 풀릴 것이지만 곧 최후의 패배를 당하여 영원한 형벌 속으로 던져질 것이다.
복음서에서 주로 귀신들림과 관련해서 쓰이고 있는 베엘제불이라는 그의 이름은 에크론의 신 이름인 베엘제붑(Baalzebub)에서 유래한 것이다(Ⅱ열왕 1). 또한 사탄은 마귀(diabolos)와 동일시되기도 하는데, 마귀라는 용어는 〈신약성서〉에서 사탄보다 더 자주 나타난다. 〈코란〉에서는 '사탄'이란 뜻의 고유명사 '샤이탄'(Shaitan)이 쓰인다.
초대 그리스도교 저술가들에게 사탄이라는 것은 악의 본질, 구원의 의미, 그리스도의 속죄사역의 목적과 효력을 논할 때 중요한 요소로 등장했다. 초대·중세 교회의 저술가들은 전능하고 전지하며 전애(全愛)한 하느님이 창조하여 섭리하는 우주 안에 사탄 같은 영적 존재가 있다는 믿음으로 인해 야기되는 문제들을 장황하게 토론했다.
초자연적인 것의 신앙에 대한 18세기 반항운동의 영향 아래서 자유주의적인 그리스도교 신학은 사탄에 관한 성서의 언어를 문자 그대로 해석해서는 안 될 '허구'로 취급하려는 경향이 있었다. 즉 우주 안에 있는 악의 실재와 범위를 인간의 외부에서 인간과는 별도로 존재하면서 인간 영역에 심대한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표현하려는 것을 신화적인 시도로 취급하려고 했다.“
(출처: DAUM 백과사전)
“사탄
존 밀튼의 실낙원에 나오는 사탄을 묘사한 귀스타프 도레의 그림
사탄은 히브리어 낱말 “대항자”(Standard Hebrew: שָׂטָן, Satan; Tiberian Hebrew Śāṭān; Koine Greek: Σατανάς, Persian: اهریمن, Satanás; Aramaic: סטנא, Saṭänä; Arabic: شيطان, Šayṭān, Ge'ez: ሳይጣን Sāyṭān, Turkish: Şeytan)에서 따온 말로 아브라함계 종교에서 등장하는데, 야훼에게 대항하는 영적(靈的) 무리의 우두머리를 일컫는 이름이다. 하 사탄(Ha-Satan) 역시 같은 존재를 일컫는데, “고발하는 자”라는 뜻을 갖고 있다. 이 표현은 구약성경의 욥기와 스가랴에 등장한다.
사탄교회의 상징.
사탄 숭배 [satanism, 마귀숭배]
devil worship, worship of Satan(devil)이라고도 함.
유대-그리스도교 전승에서 하느님과 철저히 대립해 있는 절대 악의 구현으로 간주되는 인격 혹은 원칙에 대한 숭배.
유대-그리스도교 영적 지배에 대한 극단적인 저항의 몸짓으로 간주할 수 있다. 사탄 숭배에 대한 문서상의 증거는 유럽과 아메리카에서 17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나 어떤 시기에든 실제 사탄 숭배자의 수효를 과장되게 추산하는 일이 빈번했기 때문에 그 이전의 역사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추적하기가 어렵다. 성직자들은 사탄숭배의 기원을 쉽게 '마법사들'과 영지주의 카타르파(Cathar)·보고밀파(Bogomil) 같은 이단에게 돌리지만, 이러한 단죄는 그 이단들이 자신들의 신념을 이해하는 것과 일치하지 않으며, 마녀 화형이 절정에 달할 당시 박해를 당한 사람들에게 덮어씌운 사탄 숭배자라는 죄목은 마녀 색출자들의 지나친 상상과 고문으로 얻은 자백에 근거를 둔 것일 가능성이 높다.
마찬가지로 사탄 숭배의 기원을 비그리스도교 종교로 돌리는 것도 대개 논쟁이나 오해에 근거한다. 오늘날의 마법사나 신이교주의자(Neo-Paganism)도 사탄 숭배자들과 혼동해서는 안 되는데, 이는 이 집단들이 사탄이 아닌 그리스도교 이전 시대의 신들을 숭배하기 때문이다. 유대-그리스도교가 규정한 악의 원천에 대한 숭배로서 사탄 숭배는 유대-그리스도교 전통의 세계관을 공유하면서 뒤집은 것이기 때문에 그 전통과 나란히 존재할 수밖에 없다.
사탄 숭배는 전통적으로 그리스도교의 성찬식을 왜곡되게 각색한 '흑미사'(black mass)와 주술을 통해 사탄을 불러내는 의식에 집중되어왔다. 오늘날 일부 사탄 숭배자 집단은 기존의 의식을 심리극과 '환기항진'(換氣亢進)을 연상시키는 자기표현 의식들로 대체한다.“
(출처: DAUM 백과사전)
“천사 (종교) [天使, angel]
조로아스터교·유대교·그리스도교·이슬람교 등 서양종교의 자애로운 영적 존재.
신성한 영역(초월적 세계)과 시간·공간·인과 등에 의해 지배되는 세속적 영역을 매개한다. 동양종교에서 이와 비교될 수 있는 존재는 힌두교의 아바타라와 불교의 보살이다. 천사는 신의 사자(angel은 '전달자'라는 뜻의 그리스어에서 유래)나 종으로, 개인과 국가의 수호자 역할을 한다. 주요서양종교나 독자적인 종교 종파(예를 들면 이슬람교에서 발전한 드루즈파) 또는 혼합주의 운동 가운데 유대교, 그리스도교, 이란 및 헬레니즘적 종교개념을 통합한 영지주의(靈智主義:물질을 악한 것으로, 영을 선한 것으로 보고 비의적 지식이나 영지를 통해 구원에 이를 수 있다고 봄)의 신학자나 철학사상가들은 천사를 여러 등급 또는 계급으로 구분했다.
이러한 천상적 존재를 여러 등급, 즉 4·7·12개 등급으로 구분한 것은 대개 행성영역에 관한 헬레니즘 또는 이란 점성술 이론에 기초하거나, 동양의 전제군주제의 계급구조에 근거하고 있다.
BC 6세기 페르시아 개혁자 자라투스트라가 창시한 조로아스터교에서는, 선신(善神) '아후라 마즈다'의 자애로운 불멸자인 '아메샤 스펜타'는 스펜타 마이뉴(거룩한 영), 보후 마나(선한 마음), 아샤(진리), 아르마이티(올바른 마음), 크샤트라 바이랴(왕국), 하우르바타트(완전함), 아메레타트(불멸) 등 7개 계급으로 나누어진다. 유대교에서 천사의 계급(〈구약성서〉에서는 '하늘의 군대', '천군천사'라고 불림)은 엄격하게 정해져 있지 않다.
성서 시대 이후의 유대교, 특히 하느님의 극적인 역사개입을 묘사하고 있는 묵시문학에서 때때로 대천사라고 불리는 7천사는 하늘의 군대를 이끄는 것으로 나타난다(→ 대천사). 〈탈무드〉(유대교의 율법·구전·주석의 권위있는 편람)에 따르면, 이 하늘의 군대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고 한다. 위경인 〈에녹 1서〉 20장에 열거된 7천사는 우리엘(지하세계인 스올의 수호자이며 하늘 군대의 지휘자), 라파엘(인간 영혼의 수호자), 라구엘(빛의 세계에 대항하는 이들에 대한 하느님의 복수자), 미카엘(이스라엘의 수호자), 사리엘(영적인 죄를 범한 자에 대한 영의 복수자), 가브리엘(낙원, 세라핌, 케루빔의 통치자), 예레미엘이라고도 불리는 레미엘(스올에서 영혼을 지키는 자)인데, 이들 중 미카엘과 가브리엘은 〈구약성서〉에 언급되어 있고, 라파엘과 우리엘은 외경에 언급되어 있다.
랍비 문학에서 천사는 상위와 하위의 두 기본집단으로 분류된다. 상위집단에 속하는 천사에는 하느님의 보좌와 병거를 수호하는 날개 달린 천사인 케루빔과 세라핌 및 오파님(히브리어로 '바퀴들'이라는 뜻)이 있는데 이들은 모두 〈구약성서〉에 등장한다. 사해두루마리와 관련있는 종파에서 상위 천사들은 빛·어둠·파괴·거룩함의 천사들이다.
그리스도교는 유대교 전통에 기초하여 천사의 계급을 설명했다. 천사·대천사·세라핌[熾品天使]·케루빔[智品天使] 외에 〈신약성서〉 바울로의 편지에 언급된 영적인 5천사, 즉 역품(力品)천사·능품(能品)천사·권품(權品)천사·주품(主品)천사·좌품(座品)천사가 4세기경 교회에 받아들여졌다. 이 천사들은 천사 계급 또는 천사 성가대를 구성한다. 로마 가톨릭 교회와 동방정교회에서는 대천사 미카엘·가브리엘·라파엘이 숭배의 대상으로 특별한 주목을 받는다.
이슬람교는 유대교와 그리스도교 천사 개념을 이어받아 천사의 계급을 설명했다. 상위 계급부터 차례로 열거하면, 이슬람 전설(〈신약성서〉 〈요한의 묵시록〉에서 유래)에서 인간·황소·독수리·사자로 상징되는 알라의 4보좌 운반자, 알라를 찬양하는 케루빔, 4천사(계시자인 지브릴 혹은 가브리엘, 공급자인 미칼 혹은 미카엘, 죽음의 천사인 이즈라일, 최후 심판의 천사인 이스라필)가 있으며, 하위 천사로는 하파자와 수호천사들이 있다.
천상적·영적 존재들의 계급은 서양의 주요종교에서 분리되어 나온 여러 종교, 예를 들면 유대교, 그리스정교·그리스도교 전승의 여러 요소를 혼합한 영지주의, 드루즈 종파, 3세기 페르시아의 개혁자 마니가 창시한 이원론적 종교인 마니교 등에서도 발전했다. 이런 종교들은 대개 계급 개념을 아이온(에온)·아르콘같은 유출론이나 황도십이궁 같은 점성술 개념에 통합했다.“
(출처: DAUM 백과사전)
“천사 (종교) [天使, angel]
요약
조로아스터교·유대교·그리스도교·이슬람교 등 서양종교의 자애로운 영적 존재.
본문
신성한 영역(초월적 세계)과 시간·공간·인과 등에 의해 지배되는 세속적 영역을 매개한다. 동양종교에서 이와 비교될 수 있는 존재는 힌두교의 아바타라와 불교의 보살이다. 천사는 신의 사자(angel은 '전달자'라는 뜻의 그리스어에서 유래)나 종으로, 개인과 국가의 수호자 역할을 한다. 주요서양종교나 독자적인 종교 종파(예를 들면 이슬람교에서 발전한 드루즈파) 또는 혼합주의 운동 가운데 유대교, 그리스도교, 이란 및 헬레니즘적 종교개념을 통합한 영지주의(靈智主義:물질을 악한 것으로, 영을 선한 것으로 보고 비의적 지식이나 영지를 통해 구원에 이를 수 있다고 봄)의 신학자나 철학사상가들은 천사를 여러 등급 또는 계급으로 구분했다.
이러한 천상적 존재를 여러 등급, 즉 4·7·12개 등급으로 구분한 것은 대개 행성영역에 관한 헬레니즘 또는 이란 점성술 이론에 기초하거나, 동양의 전제군주제의 계급구조에 근거하고 있다.
BC 6세기 페르시아 개혁자 자라투스트라가 창시한 조로아스터교에서는, 선신(善神) '아후라 마즈다'의 자애로운 불멸자인 '아메샤 스펜타'는 스펜타 마이뉴(거룩한 영), 보후 마나(선한 마음), 아샤(진리), 아르마이티(올바른 마음), 크샤트라 바이랴(왕국), 하우르바타트(완전함), 아메레타트(불멸) 등 7개 계급으로 나누어진다. 유대교에서 천사의 계급(〈구약성서〉에서는 '하늘의 군대', '천군천사'라고 불림)은 엄격하게 정해져 있지 않다.
성서 시대 이후의 유대교, 특히 하느님의 극적인 역사개입을 묘사하고 있는 묵시문학에서 때때로 대천사라고 불리는 7천사는 하늘의 군대를 이끄는 것으로 나타난다(→ 대천사). 〈탈무드〉(유대교의 율법·구전·주석의 권위있는 편람)에 따르면, 이 하늘의 군대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고 한다. 위경인 〈에녹 1서〉 20장에 열거된 7천사는 우리엘(지하세계인 스올의 수호자이며 하늘 군대의 지휘자), 라파엘(인간 영혼의 수호자), 라구엘(빛의 세계에 대항하는 이들에 대한 하느님의 복수자), 미카엘(이스라엘의 수호자), 사리엘(영적인 죄를 범한 자에 대한 영의 복수자), 가브리엘(낙원, 세라핌, 케루빔의 통치자), 예레미엘이라고도 불리는 레미엘(스올에서 영혼을 지키는 자)인데, 이들 중 미카엘과 가브리엘은 〈구약성서〉에 언급되어 있고, 라파엘과 우리엘은 외경에 언급되어 있다.
랍비 문학에서 천사는 상위와 하위의 두 기본집단으로 분류된다. 상위집단에 속하는 천사에는 하느님의 보좌와 병거를 수호하는 날개 달린 천사인 케루빔과 세라핌 및 오파님(히브리어로 '바퀴들'이라는 뜻)이 있는데 이들은 모두 〈구약성서〉에 등장한다. 사해두루마리와 관련있는 종파에서 상위 천사들은 빛·어둠·파괴·거룩함의 천사들이다.
그리스도교는 유대교 전통에 기초하여 천사의 계급을 설명했다. 천사·대천사·세라핌[熾品天使]·케루빔[智品天使] 외에 〈신약성서〉 바울로의 편지에 언급된 영적인 5천사, 즉 역품(力品)천사·능품(能品)천사·권품(權品)천사·주품(主品)천사·좌품(座品)천사가 4세기경 교회에 받아들여졌다. 이 천사들은 천사 계급 또는 천사 성가대를 구성한다.
로마 가톨릭 교회와 동방정교회에서는 대천사 미카엘·가브리엘·라파엘이 숭배의 대상으로 특별한 주목을 받는다. 이슬람교는 유대교와 그리스도교 천사 개념을 이어받아 천사의 계급을 설명했다. 상위 계급부터 차례로 열거하면, 이슬람 전설(〈신약성서〉 〈요한의 묵시록〉에서 유래)에서 인간·황소·독수리·사자로 상징되는 알라의 4보좌 운반자, 알라를 찬양하는 케루빔, 4천사(계시자인 지브릴 혹은 가브리엘, 공급자인 미칼 혹은 미카엘, 죽음의 천사인 이즈라일, 최후 심판의 천사인 이스라필)가 있으며, 하위 천사로는 하파자와 수호천사들이 있다.
천상적·영적 존재들의 계급은 서양의 주요종교에서 분리되어 나온 여러 종교, 예를 들면 유대교, 그리스정교·그리스도교 전승의 여러 요소를 혼합한 영지주의, 드루즈 종파, 3세기 페르시아의 개혁자 마니가 창시한 이원론적 종교인 마니교 등에서도 발전했다. 이런 종교들은 대개 계급 개념을 아이온(에온)·아르콘같은 유출론이나 황도십이궁 같은 점성술 개념에 통합했다.“
(출처: NAVER 백과사전)
“천사
1400년대 월튼 두폭화
천사(天使, 히브리어: מלאך, 라틴어: Angelus, 그리스어: Άγγελος, 아랍어: الملك)는 성서에 등장하는, 하느님이 자신을 보좌하고 섬기도록 불(이슬람교에서는 빛)에서 창조한 영적인 존재들을 가리킨다.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에서는 천사가 실제로 존재한다고 믿고 있다. 천사라는 명사는 역할을 뜻하는 말로 ‘심부름꾼’을 뜻하는 히브리어 מַלְאָך(mal'aĥ)를 번역한 것이다.
유대교에서의 천사
구약성서에서 천사들은 하느님을 에워싸고 있는 유일한 천상 군대로, ‘하느님의 아들들(욥기 2,1)’, ‘거룩한 종들(욥기 5,1)’, ‘중개자’, ‘불사자’ 등으로 불린다.
성서의 아주 오랜 이야기에도 천사들이 등장한다. 《창세기》에서 천사는 여러 번에 걸쳐 하느님의 지엄한 명령을 전달한다. 하느님 자신과 마찬가지로 하느님의 이름으로, 하느님의 위치에서 말하고 행동하며, 《출애굽기》에서는 홍해를 건널 때 유대인을 보호하기 위해 파견된다(탈출 13,21~22). 천사는 하느님의 종인 아브라함(창세 24,7)과 야곱(창세 48,16)을 지켜주기도 하였다.
하느님은 불길한 사명을 띤 불행의 천사들도 파견하는데, 이 징벌의 천사는 여러 가지 사건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한다(탈출 12,29). 구약성서의 끝 부분에 이르러 천사들은 그들의 사명과 관련된 이름으로 지칭된다. ‘하느님의 치유’라는 뜻의 라파엘은 아스모데오를 퇴치하여 토비아의 눈을 낫게 하고(토비 3,17; 12,15), ‘하느님의 힘’이라는 뜻의 가브리엘은 하느님의 비밀을 계시한다(다니 8,1~27). ‘하느님과 같은 자’라는 뜻의 미카엘은 모든 천사들의 우두머리로 이스라엘을 수호한다(다니 19,15~21).
기독교에서의 천사
신약성서에서, 이미 알려진 천사들의 이름에 바울로는 대천사의 이름을 덧붙인다(1테살 4,16). 천사들은 육화(루카 1,26), 탄생(루카 2,9~13), 사막에서의 유혹(마르 1,15), 승천(사도 1,30) 등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 생활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 천사들은 인간을 보호하고(마태 18,10; 사도 12,15) 그들의 기도를 하느님에게 전달하여 의로운 사람들의 영혼을 천국으로 인도한다(루카 16,22). 미카엘은 이스라엘을 수호했듯이 갓 지은 교회를 수호한다. 예수는 부활한 인간의 마지막 운명을 언급하면서 선민들은 하느님의 천사처럼 되어 아내나 남편을 취하지도 않고 죽지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마태 22,30).
이슬람교에서의 천사
기독교에서 대천사 가브리엘은 예수의 잉태를 알리는 중요한 역할이지만, 이슬람교에서는 무하마드에게 신의 말씀을 전하는 역할로밖에 나오지 않는다.
천사의 모습
다수의 날개를 가진 케루빔 (1156)
일반적으로 천사는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육체를 갖지 않은 존재다. 따라서 인간과 같이 남녀의 성적 구별이나 나이 구별도 없다. 그러나 하느님의 의지를 전달하기 위해 지상으로 내려올 때는 인간과 가까운 모습으로 바뀌는데, 기록에 따르면 주로 두 가지 형태로 묘사된다.
첫 번째 모습은, 구약성서와 신약성서에서 묘사되는, 등에 날개가 달려 있지 않고 보통 사람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성인 남성의 형태로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경우도 있다. 두 번째 모습은 세라핌, 케루빔, 오파님 등 다수의 눈과 날개를 가진 흡사 괴물과 같은 모습의 천사이다.
초기 기독교 미술에서 천사는 젊은 청년의 모습으로, 날개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천사가 날개가 달린 사람의 모습으로 생각하게 된 것은 오리엔트 및 페르시아 제국의 정령 이미지가 혼합되었기 때문이다.
중세 유럽의 회화를 보면, 천사는 날개가 달린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당시 유럽인들의 의상을 입고 있다. 천국의 성가대를 구성하는 천사들은 미소년의 모습으로, 대천사 가브리엘은 우아한 남성의 모습으로, 또 악과 싸우는 사명을 가진 대천사 미카엘 등은 갑옷을 입고 검을 든 용감한 전사의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근세 이후부터는 벌거벗은 귀여운 어린아이의 모습이나 여성적인 모습, 상냥한 남성의 모습으로 그려지게 되었는데, 이는 르네상스기에 그리스 신화의 에로스의 이미지를 차용한 것으로 여겨진다.
천사의 계급
천사란 말은 일반적으로 등급이나 단의 구별 없이 모든 천상의 영을 말한다. 그러나 특별한 뜻으로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사자로서 통상적 행위를 하는 낮은 등급이나 단의 영을 말하기도 한다. 명칭이나 서열은 성서에 나타나 있다. 이들은 천국에서 서로 다른 기능을 갖고 있다. 암브로시우스 시대부터 교부들과 신학자들은 천사들을 9단으로 인식해 왔다. 6세기 초에는 아레오 라지테의 프세우도 디오니시오에 의해 9품이 3개의 계급으로 구분되었다. 그들의 의무, 그리고 그들의 능력은 성서에서 몇 가지 속성과 권한들을 보고 알 수 있다. 이것은 신적 도리로 믿지는 않지만 교회의 전통으로 내려오는 교리 가운데 하나이다.
1) 상급 천사
치품 천사(Seraphim)-이사 6,2
지품 천사(Cherubim)-창세 3,24
좌품 천사(Ophanim)-콜로 1,16
2) 중급 천사
주품 천사(Dominationes)-콜로 1,16
역품 천사(Virtus)-에페 1,20
능품 천사(Potestates)-콜로 1,15
3) 하급 천사
권품 천사(Principatus)-콜로 1,15
대천사(Archangelus)-1테살 4,16
천사(Angelus)-창세 19,1;묵시 5,2“
(출처: 위키 백과)
“최후의 심판 (종교) [Last Judgment]
하느님이나 신들, 또는 인과율에 의해 사람의 생각과 언행을 총체적으로 심판하거나 때로 개별적으로 심판하는 일.
일부 종교(예를 들면 그리스도교)에서 심판은 죽은 자와 산 자 모두에게 행해지며, 다른 종교들(예를 들면 아프리카의 원시종교)에서는 사람이 죽은 직후 그 행위에 따라 하느님이 보상이나 벌을 내리는 심판이 일어난다고 본다.
서방의 예언 종교들(예를 들면 조로아스터교·유대교·그리스도교·이슬람교)은 많은 표상으로 최후의 심판 개념을 발전시켰다. BC 6세기경 이란의 예언자 자라투스트라에 의해 창시된 조로아스터교는 죽은 뒤 3일 밤을 무덤에서 기다린 후 4일째 되는 날 보응의 다리로 가서 행위에 대한 평가를 받는다고 가르친다.
만일 선행이 악행보다 더 많으면, 영혼은 다리를 건너 하늘로 올라갈 수 있다. 악행이 선행보다 더 많으면 영혼이 건널 수 없도록 다리가 좁아져 결국 춥고 어두운 지옥의 깊은 나락으로 떨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으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모든 인간을 소생시키고 최후의 심판을 주재하며 세상의 선을 회복시키는 지혜의 주 '아후라 마즈다'가 악마들의 우두머리인 '아흐리만'을 결국 굴복시키기 때문이다.
초기 유대교 저자들은 이스라엘의 하느님 야훼의 날(주의 날이라고도 함)을 강조했다. 이스라엘과 모든 민족을 심판하는 이날 비로소 하느님의 나라가 시작되리라는 것이다. 그리스도교는 최후의 심판 개념을 더욱 발전시켜 파루시아('영광 속에서 일어나는 그리스도의 재림') 때 최후의 심판이 있으며, 모든 인간이 심판하는 하느님 앞에 서게 된다고 가르친다.
초기 그리스도교 예술에서는 심판자 그리스도, 죽은 자의 부활, 영혼에 대한 평가, 구원받은 자와 저주받은 자의 구별, 낙원과 지옥 등이 묘사된다. 로마네스크 예술가들은 그리스도를 묵시문학에 등장하는 4마리의 신비한 동물(독수리, 사자, 황소, 날개달린 인간)에 둘러싸인 채 칼을 휘두르는 완고한 심판자로 묘사하거나, 천국과 지옥을 경외와 광포함으로 비교하는 등 최후의 심판을 더 무섭게 묘사했다. 고딕 시대의 보다 세련되고 인간주의적인 예술에서 그리스도는 오른쪽 옆구리가 벗겨져나가 창에 찔린 상처를 드러내고 상처입은 두 손을 쳐들어 자신의 희생을 강조하는 구원자의 모습으로 아름답게 묘사된다.
그를 둘러싸고 있는 것은 십자가·못·창·가시면류관 등 수난의 도구들이다. 그리스도, 즉 중보자(仲保者)들을 복원하는 등 최후의 심판 장면을 낙관주의적으로 묘사한다. 16세기 미켈란젤로는 로마에 있는 시스티나 예배당의 프레스코에서 지옥에 떨어진 자들을 위협적으로 바라보고 있는 복수심에 가득한 그리스도를 이교도의 신처럼 벌거벗은 모습으로 그림으로써 최후의 심판에 대한 전혀 다른 견해를 표현했다.
이슬람교에서도 역시 최후의 심판에 대한 형상은 아주 풍부하여, 그 개념이 많이 확대되었다. 심판의 날은 이슬람교의 5대 신앙 중 하나이다. 사람이 죽으면 '문카르'와 '나키르' 등 두 천사에게 신앙에 관한 질문을 받는다. 만일 순교의 삶을 살았다면 영혼은 곧 바로 낙원에 가지만, 다른 사람들은 일종의 연옥을 통과해야 한다. 운명의 날에 모든 사람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 사람의 선한 행위와 악한 행위를 수록한 2권의 책에 실린 기록에 따라 심판을 받을 것이다. 사람은 목에 매달린 책의 비중에 따라 낙원이나 지옥으로 갈 것이다.
서방종교와 일부 원시종교뿐만 아니라 고대 근동종교들도 최후의 심판에 대한 신앙을 발전시켰다. 예를 들면 고대 이집트 종교에서는 죽은 자의 심장이 신 '아누비스'의 저울에 올려져 심판을 받는다. 심장이 가볍다는 것은 그 사람이 비교적 선하게 살았음을 가리킨다. 그런 사람의 영혼은 죽음의 신 '오시리스'가 지배하는 축복받은 곳으로 들어갈 수 있다. 그러나 심장이 무거우면 '삼키는 자'라고 불리는 반신반인(半神半人)에 의해 영혼이 파괴된다. 환생을 믿는 아시아 종교들(예를 들면 힌두교·자이나교·불교)에서도 최후의 심판개념은 이례적인 것이 아니다(→ 윤회설).“
(출처: 다음 백과사전, 검색어 - 최후의 심판)
“구원 [救援]
요약
신적인 존재의 힘이나 자신의 정진과 노력으로 삶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부정적인 상황에서 벗어나는 일.
본문
모든 종교인들이 궁극적으로 바라고 실현되기를 원하는 것으로 이를 이루기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가 종교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현세의 삶에서 비롯되는 질병이나 재앙, 여러 면에서 맞닥뜨리게 되는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또는 인간이 어쩔 수 없이 겪게 되는 죽음이나 인간의 존재, 그리고 죽음 뒤에 맞게 될 세계에 관한 해답을 얻기 위해서 구원을 바란다.
이에 대한 바람은 그것을 얻으려는 자세에서 절대자나 초자연적인 힘에 의지하는 타력적 구원형과 자신의 힘으로 얻으려는 자력적 구원형으로 나뉘어 전개된다. 앞의 경우는 초월적 존재에 자신을 모두 바치는 것을 전제로 하며 뒤의 경우는 스스로가 초월적 존재와 합일되려고 노력하는 적극적인 태도를 기본으로 한다.구체적인 종교를 살펴보면 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 등은 타력종교에, 유교 불교 등은 자력종교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그리스도교에서의 구원의 의미는 매우 다양하나 가장 중심적인 것은 죄(罪)로 부터의 구원이다. 그리스도교의 전통에서는 죄가 인간의 유한성의 의미로 이해되어 왔고, 인간은 유한하기 때문에 스스로 죄에서 벗어날 수 없는 존재라고 본다.
결국 신의 도움, 즉 은총이 없이는 구원될 수 없으며, 구체적으로는 예수의 십자가에서의 대속을 통해서만 구원받을 수 있다고 한다. 즉 인간이 은총을 통해서 구원받으려면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 전제되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힌두교에서는 무지(無知:avidya)의 상태에서 벗어나는 것을 구원(moksha)이라 한다.
구원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으며 여러 번 환생을 되풀이하다가 마침내 구원의 상태에 이른다고 하였다. 우선 욕망(kama)을 이루되 그것이 궁극적인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그 다음으로는 부귀영화(artha)를 누리되 역시 최종목표가 아님을 알고 다음 목표인 종교적 의무(dharma)를 위해 포기할 수 있어야 한다. 결국에는 마지막 목표인 구원을 얻도록 노력해야 하며 그 구체적 방법을 요가로 보았다.
불교의 구원은 욕망(혹은 집착)에서 벗어나는 것이며 그러한 상태가 최고의 기쁨이자 극락인 열반(涅槃)이다. 열반에 이르기 위해서는 현세에서 팔정도(八正道)를 실천하는 등 많은 계율을 지켜야 하므로, 극락은 저절로 오는 것이 아니라 현세에서 끊임없이 노력해야 얻어지는 것이라고 보았다.
우리의 전통신앙에서는 현세의 삶 속에서 구원을 찾으려 한다. 무당과 굿을 중심으로 하는 민간신앙은, 질병을 고치고 재난을 미리 막아 인간이 겪어야 하는 현세적 불행에서 벗어나는 것을 구원으로 여긴다. 구원을 이루게 하는 것은 삶의 여러 기능과 관련이 있는 신이나 초월적인 힘이다. 그러나 현세의 구원을 바라는 전통신앙에도 조상에 대한 제사를 지내거나 죽은 자에 대한 굿을 하는 등 내세에서의 구원을 바라는 모습이 포함되어 있다.“
(출처: NAVER 백과사전)
"Q74(마 6;24,눅16;13)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는 없느니라.
지금 한국기독교의 가장 큰 문제는 현세의 축복만을 갈구한다는 것이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이 중산층의 재물을 늘려준다는 신념이 팽배해 있는 것이다. 예수를 믿으면 병도 낫고 돈도 벌고 교회 멤버와의 유대도 강화되며 사회 생활이 용이해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실적 이점이 없으면 기독교인들은 교회에 나가지 않을 것이다. 여기 ”하나님의 재물‘의 “재물”은 맘몬(mammon)이다. 맘몬이란 “돈신(God of Money)"인 것이다. 한국 기독교는 하나님을 섬기는가, 돈신을 섬기는가?
도마 복음서 제47장에는 이런 말이 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한 사람이 동시에 두 말을 탈 수 없고, 두 활을 동시에 당실 수 없나니···”"
(출처: 큐복음서-신약성서 속의 예수의 참 모습, 참 말씀, 도올 김용옥, 통나무, 2008.4, 서울, p.239-240)
"6.25 사변 이후 마산 근방 성주사라는 절에서 서너달 머무를 때입니다. 처음 가서 보니 법당 위에 큰 간판이 붙었는 데 ‘법당 중창 시주 윤 0 0'라고 굉장히 크게 씌여 있었습니다. 누구냐고 물으니 마산에서 한약국을 경영하는 사람인 데 신심이 있어 법당을 모두 중수했다는 겁니다. “그 사람이 언제 여기 옵니까?” 하고 물으니 스님이 오신 줄 알면 내일이라도 곧 올 거라는 겁니다.
그 이튿날 과연 그분이 인사하러 왔노라기에, “소문 들으니 당신 퍽 신심이 깊다고 다 칭찬하던데, 나도 처음 오자마자 법당위를 보니 그 표가 업혀 있어서 당신 신심있는 것이 증명되었지.” 하였습니다. 처음에는 칭찬을 많이 하니 퍽 좋아하는 눈치였습니다.
“그런데 간판 붙이는 위치가 잘못된 것 같아. 간판이란 남들 많이 보기 위한 것이데 이 산중에 붙여 두어야 몇 사람이나 와서 보겠어? 그러니 저걸 떼어서 마산역 앞 광장에 갖다 세우자구. 내일이라도 당장 옮겨 보자고.”
“아이구, 스님 부끄럽습니다.”
“부끄러운 줄 알겠소? 당신이 참으로 신심에서 돈 낸 것인가? 저 간판 얻으려 돈 낸 것이지.”
어떤 사람들은 시주할 때 미리 조건을 내세웁니다. 비석을 세워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비석을 먼저 세워줍니다. 그러면 돈은 내지 않고 비만 떼어먹기도 합니다.
“잘못되었습니다. 제가 몰라서 그랬습니다.”
“몰라서 그랬다고? 몰라서 그런 것이야 허물이 있나? 고치면 되지. 그러면 이왕 잘못된 것을 어찌 하려는가?”
그랬더니 자기 손으로 그 간판을 떼어 내려서 탕탕 부수어 부엌 아궁이에 넣어 버리는 것입니다.“
(출처: 자기를 바로 봅시다, 퇴옹 성철, 도서출판 장경각, 2008.6, 서울, p.108)
종교 [宗敎, religion]
요약
무한(無限)·절대(絶對)의 초인간적인 신을 숭배하고 신앙하여 선악을 권계하
고 행복을 얻고자 하는 일.
본문
인간의 정신문화 양식의 하나로 인간의 여러 가지 문제 중에서도 가장 기본적인 것에 관하여 경험을 초월한 존재나 원리와 연결지어 의미를 부여하고 또 그 힘을 빌려 통상의 방법으로는 해결이 불가능한 인간의 불안·죽음의 문제, 심각한 고민 등을 해결하려는 것이다. 종교의 기원은 오래이며, 그 동안 많은 질적 변천을 거쳐 왔으나 오늘날에도 인간의 내적 생활에 크게 영향을 끼치고 있다.
(출처: NAVER 백과, 검색어-종교)
세계의 주요 종교
신자 수에 따른 주요 종교
1. 기독교 21억 명
• 천주교: 11억 명
• 개신교: 3.5억 명
• 정교회: 2.4억 명
• 성공회: 8400만 명
• 그 밖의 기독교 분파: 3.5억 명
2. 이슬람교 13억 명
• 수니파: 9.4억 명
• 시아파 1.7억 명
3. 무종교/무신론/불가지론 11억 명
4. 힌두교 9억 명
5. 유교/도교 등의 중국 전통 종교 3.94억 명
6. 불교 3.76억 명
• 대승불교: 1.85억 명
• 소승불교: 1.24억 명
7. 원시 토착 신앙 3억 명
• 샤머니즘 등
8. 아프리카 토속 신앙 1억 명
• Not a single organized religion, this includes traditional African beliefs such as Yoruba as well as Diasporic beliefs such as Santeria (which itself draws from Catholicism) and Vodoun.
9. 시크교 2300만 명
10. 주체사상 1900만 명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가르치는 정치 사상이지만 일부는 이를 종교로 분류하기도 함.
11. 정령 숭배 1500만 명
• Not a single organized religion, includes a variety of beliefs including some forms of Umbanda.
12. 유대교 1400만 명
13. 바하이 신앙 700만 명
14. 자이나교 420만 명
15. 신토 400만 명
16. 카오다이교 400만 명
17. 조로아스터교/배화교 260만 명
18. 텐리쿄/천리교 200만 명
19. 신이교주의 100만 명
20. 유니테리안 유니버셜리즘 80만 명
21. 라스타파리 운동 60만 명
• Not a single organized religion.
22. 사이언톨로지교 50만 명
(출처: 위키백과 ―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Q74(마 6;24,눅16;13)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는 없느니라.
지금 한국기독교의 가장 큰 문제는 현세의 축복만을 갈구한다는 것이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이 중산층의 재물을 늘려준다는 신념이 팽배해 있는 것이다. 예수를 믿으면 병도 낫고 돈도 벌고 교회 멤버와의 유대도 강화되며 사회 생활이 용이해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실적 이점이 없으면 기독교인들은 교회에 나가지 않을 것이다. 여기 ”하나님의 재물‘의 “재물”은 맘몬(mammon)이다. 맘몬이란 “돈신(God of Money)"인 것이다. 한국 기독교는 하나님을 섬기는가, 돈신을 섬기는가?
도마 복음서 제47장에는 이런 말이 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한 사람이 동시에 두 말을 탈 수 없고, 두 활을 동시에 당실 수 없나니···”"
(출처: 큐복음서-신약성서 속의 예수의 참 모습, 참 말씀, 도올 김용옥, 통나무, 2008.4, 서울, p.239-240)
"6.25 사변 이후 마산 근방 성주사라는 절에서 서너달 머무를 때입니다. 처음 가서 보니 법당 위에 큰 간판이 붙었는 데 ‘법당 중창 시주 윤 0 0'라고 굉장히 크게 씌여 있었습니다. 누구냐고 물으니 마산에서 한약국을 경영하는 사람인 데 신심이 있어 법당을 모두 중수했다는 겁니다. “그 사람이 언제 여기 옵니까?” 하고 물으니 스님이 오신 줄 알면 내일이라도 곧 올 거라는 겁니다.
그 이튿날 과연 그분이 인사하러 왔노라기에, “소문 들으니 당신 퍽 신심이 깊다고 다 칭찬하던데, 나도 처음 오자마자 법당위를 보니 그 표가 업혀 있어서 당신 신심있는 것이 증명되었지.” 하였습니다. 처음에는 칭찬을 많이 하니 퍽 좋아하는 눈치였습니다.
“그런데 간판 붙이는 위치가 잘못된 것 같아. 간판이란 남들 많이 보기 위한 것이데 이 산중에 붙여 두어야 몇 사람이나 와서 보겠어? 그러니 저걸 떼어서 마산역 앞 광장에 갖다 세우자구. 내일이라도 당장 옮겨 보자고.”
“아이구, 스님 부끄럽습니다.”
“부끄러운 줄 알겠소? 당신이 참으로 신심에서 돈 낸 것인가? 저 간판 얻으려 돈 낸 것이지.”
어떤 사람들은 시주할 때 미리 조건을 내세웁니다. 비석을 세워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비석을 먼저 세워줍니다. 그러면 돈은 내지 않고 비만 떼어먹기도 합니다.
“잘못되었습니다. 제가 몰라서 그랬습니다.”
“몰라서 그랬다고? 몰라서 그런 것이야 허물이 있나? 고치면 되지. 그러면 이왕 잘못된 것을 어찌 하려는가?”
그랬더니 자기 손으로 그 간판을 떼어 내려서 탕탕 부수어 부엌 아궁이에 넣어 버리는 것입니다.“
(출처: 자기를 바로 봅시다, 퇴옹 성철, 도서출판 장경각, 2008.6, 서울, p.108)
"가모프 씨의 현미경 관찰
조지 가모프 씨는 과음과 카드 속임수를 좋아하는 사교적인 우크라이나 출생의 독립 입장을 취하는 지식인이었다. 그는 1904년 오뎃사에서 태어났고, 어려서부터 과학에 관심을 보여 주었다. 그는 아버지에게서 받은 현미경에 매료되었다 그리고 빵과 포도주가 예수의 피와 살로 변화되는 성변화의 과정을 분석하는 데에 현미경을 사용하였다. 그가 다니는 러시아 정교 교회의 영성체에 참석을 하여 빵조각과 와인 몇방울을 입속에 숨겨 집으로 달려왔다. 그는 그것을 현미경 아래에 놓고 그가 매일 보았던 빵과 와인과 비교를 하였다. 그는 빵의 구조가 예수의 몸으로 바뀌는 아무런 증거를 찾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는 후에 썼다: ' 나는 이것이 나를 과학자로 만든 실험이었다라고 생각한다.'
George Gamow was a gregarious Ukrainian-born maverick with a penchant for hard drinking and card tricks. Born in Odessa in 1904, he showed an interest in science from an early age. He became fascinated by a microscope given to him by his father and used it to analyse the process of transubstantiation. Having attended Communion at the local russian Orthdox church, he dashed home with a piece of bread and a few drops of wine secreted in his cheeks. He put them under the microscope and compared what he saw with everyday bread and wine. He could find no evidence that the structure of the bread had transformed into the body of Christ, and he later wrote: 'I think this was the experiment that made me scientist.' "
(출처: simon singh, big bang, harper perennial, new york, 2004. p.306)
"과학의 정의
과학이란 이제까지 아무도 반증(反證)을 하지 못한 확고한 경험적 사실을 근거로 한 보편성과 객관성이 인정되는 지식의 체계이어야 한다는 것이 필수조건이다. 따라서 신학 ·철학은 과학이라고 할 수 없으며, 보편성이 인정되는 형식논리학이나 수학은 넓은 의미의 과학에 들어간다. 그러나 이러한 학문은 이상과학 ·형식과학 ·선험과학(先驗科學)이라고 하며, 경험적 사실을 토대로 하여 성립된 경험과학(經驗科學)과는 대립된다.
따라서 우리는 일반적으로 과학방법론상 이 경험과학을 과학이라고 한다. 경험과학은 일반적으로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으로 나눈다. 한편, W.빈델반트나 H.리케르트는 자연과학은 설명적 과학(說明的科學)이고, 역사과학 또는 문화과학은 기술적 과학(記述的科學)이라 부르고 있으며, W.M.분트는 체계적 과학과 현상론적 과학 또는 자연과학과 정신과학으로 분류하고 있다. 물론 공학이나 의학 같은 응용과학도 과학에 속한다."
(출처: NAVER 백과, 검색어-과학의 정의)
"과학적 방법
과학적 방법(scientific method)이란 연역과 귀납의 논리학을 바탕으로 관찰-이론-실험-재현을 바탕으로 한 과학, 즉 자연과학의 방법론을 통칭한 말이다. 이는 자연과학에서의 회의주의자들, 즉 증거 없이는 믿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키는 사람들의 주장이기도 하다.
과학적 방법은 다음에 기초한다. 즉 다음이 과학적 방법론의 공리이다.
1.물질은 존재한다.
2. 인간은 물질을 인식할 수 있다.
3. 물질과 물질사이의 관계를 총칭하여 자연이라고 한다.
4. 자연에는 법칙이 있다.
5. 인간은 자연 법칙을 합리적으로 추론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이러한 공리를 토대로 자연 법칙을 연구하는 방법으로서 현재까지 인간의 합리적 추론에 의해 가장 좋은 방법은 위에서 설명한 과학적 방법인 것이다."
(출처: 위키 백과 ―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독자들은 어떤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가?
종교적인 관점으로 세상을 보고 있는가?
과학적인 관점으로 세상을 보고 있는가?
상식으로 세상사를 판단하는가?
"요약하면, 태양중심설의 우주는 상식에 반한다, 왜냐하면 상식은 때때로 근원적인 과학적인 진리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알버트 아인쉬타인은 상식에 대하여 18세의 나이까지 획득된 공통적인 편견의 집합체라고 선고하였다.
In short, a Sun-centered universe ran counter to common sense, because it sometimes has little to do with the underlying scientific truth. Albert Einstein condemned common sense, declaring it to be 'the collection of common prejudices aquired by age eighteen.' "
(출처:simon singh, big bang, harper perennial, new york, 2004. p.24)
인간이 우주의 끝을 알고 있는가?
인간이 지구의 중심을 알고 있는가?
인간이 물질인 세포가 뭉쳐져서 생각을 하고 이성과 인격을 어떻게 가지게 되는지 알고 있는가?
우리는 천지인을 알아가고 있는 과정 중에 있다. 어느 누구도 전체를 다 알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 누구나 천지인의 한 면을 조금 아느냐 아니면 조금 더 많이 아느냐의 차이 밖에 없다.
천국, 지옥, 연옥, 극락, 영혼, 사후세계, 구원에 대하여 당신은 어떤 근거를 가지고 말하고 있는가?
그리고 당신이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하고 살아야 살아있을 때는 물론이고 사후 세계에서도 영혼이 구원을 얻을 수 있는가?
우리는 여러 가지 현상을 관찰하여 이론 만들고 가설을 세우고 예측한다. 실험과 예측이 일치하면 맞는 것으로 잠정적으로 인정을 받게 된다.
우리는 수많은 가설의 홍수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이론으로 예측한 것과 실험으로 밝혀진 가설이 일치하는 정설로 인정 받을 때까지 기다려야 하고, 그리고 완벽한 정설로 인정받을 수 있는 가설들이 얼마나 될까?
우리는 가설이 아닌 실험으로 증명된 정설을 이야기해야 한다.
내가 생각하는 이론이 불완전하거나 틀리면 생각을 바꾸어야 하고, 어떤 분야이건 자신의 가설이 불완전하거나 틀리면 자신의 마음을 바꾸는 사회 풍토를 조성해야 한다.
아울러 인간의 근본 문제는 아직도 미해결이고 아직도 모른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수많은 증명되지도 않은 미신이나 가설로 뒤덮힌 사회가 아닌 증명된 정설이 상식으로 통하는 사회를 건설하는 데 매진하여야 한다.
기감능력자들은 미세 에너지 현상을 기감하고 가설을 세우고 연구한다. 많은 문제들이 기감학의 관점으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기감학은 아직 신흥 학문이고, 미세 에너지 현상은 앞으로 더더욱 연구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