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부 보존 처리하지 않고도 부패하지 않는 시신
방부 보존 처리하지 않고도 부패하지 않는 시신
Willi H. Gruen, Erdstrahlen, unheimliche Kraft oder bluehender Bloedsinn?, (Ullstein Sachbuch, Frankfurt am Main, 1986), p.163-166
피라미드의 모양은 항상 인간에게 환상적이었다. 그 대단한 크기 때문에 고대 7 대 불가사의 중의 하나에 속했다. 기감 능력자에게는 피라미드 모양이 넓게 기운을 내보내고 있고, 그리하여 유해 지기를 약하게 해주거나 유해 지기의 영향을 없애주는 중화제로의 역할을 수행하는 데 적합하다.
피라미드가 기운을 내보내는 역할을 하는 기구라면 피라미드는 어떤 파장을 가진 파를 내보고 있다는 결론이다. 피라미드는 인간에게 나쁜 영향을 주는 유해 지기를 중화시키는 기구이고, 또한 피라미드는 고대의 놀라운 발명품으로 인간이 그것을 통하여 수학, 기하학 그리고 천문학과 관계를 가지게 하였다.
피라미드 속의 바닥에서 1/3 지점의 위치에 한 여름의 더운 날에 고기를 걸어 놓아도 상하지 않고 고기의 수분만 빠져나가면서 미이라화 된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한 프랑스인이 기제(Gizeh)의 피라미드에 올라가서 파라오의 미이라가 있는 방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이 방의 입구에는 수많은 작은 동물과 고양이들이 죽어 있었다. 먹이를 찾아서 돌아다니다가 굶어죽은 것으로 보인다. 모든 동물의 시체는 냄새가 전혀 나지 않았고 미이라가 되어 있었다.
아마도 피라미드는 거대한 기운이나 힘을 모을 수 있는 렌즈와 같은 것이고, 그래서 그 힘이 피라미드 속으로 집중이 되고, 그 집중된 힘에 의해 파라오의 시체를 방부 처리하지 않고도 썩지 않을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그 프랑스인의 머리 속에 떠올랐다.
그는 프랑스에 돌아와서 자신의 집에 1 미터 정도의 밑변의 길이를 가진 미니 피라미드를 만들어 놓고 그 속에 죽은 고양이를 집어넣었다. 고양이는 시간이 지나자 미이라가 되어갔다. 피라미드 내부의 어떤 힘이 죽은 고양이의 수분을 뽑아 내는 힘을 가지고 있었고, 그 결과로 고양이의 시체가 썩어 가는 것을 멈추게 한 것이었다. 피라미드가 어떤 힘을 모으고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아직도 미해결의 상태로 남아 있다.
1959 년 체코슬로바키아의 특허청에는 특허 번호 91304 번의 특허 번호를 가진 피라미드를 이용한 특허 상품이 있었다. 엔지니어이면서 피아니스트인 드르발(Karel Drbal) 씨는 면도기 날이 한번 면도를 하면 면도날 끝이 약간 망가지면서 무디어 지기 마련인 데, 피라미드형의 케이스 속에 면도날을 위치시키면 면도날이 무뎌졌던 부분이 다시 면도하기 전의 날카로운 면도날로 바뀐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겉보기에는 피라미드 내부의 어떤 힘이 면도날의 결정 구조에 영향을 미쳐 면도날이 원래의 날카로움을 되찾는 것 같았다. 특허청의 관리들은 그의 주장을 조사하였고, 그 결과를 인정하였다.
피라미드의 미이라화 하는 작용을 그 동안 여러 사람이 시험하였다. 52 그람의 무게를 가지고 있는 계란을 43 일 동안 피라미드 속에 놓아두었더니 계란의 수분이 없어지면서 17 그람의 미이라가 되었다. 약 66 %의 수분이 계란에서 빠져나간 결과이다.
쉽게 부패하는 양의 뇌로 피라미드 실험을 하여 49 일 동안에 93 그람으로 줄어들어 수분이 75 % 빠져나간 결과를 얻었다. 1968 년 카이로 대학에서 시행한 체프렌 피라미드의 엑스레이 검사 결과를 IBM 컴퓨터를 사용하여 조사할려던 계획이 아무런 결과를 얻지 못하고 중단되고 말았다. 이 계획을 이끌었던 고헤드(Gohed) 씨는 이 피라미드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은 인간이 알고 있는 과학 법칙과 전자 공학에 반하는 것이었다 라고 말하고 있다.
아울러 아주 강한 유해 지기가 집중된 자리도 수분을 빼앗는 작용, 즉, 부패를 막는 작용을 한다고 알려져 있다. 벌써 폰 폴 씨가 강력한 유해 지기대에 노출된 시신은 썩지 않고 미이라가 된다고 자신의 경험을 말하였다. 그는 바이언 주의 좀머스도르프(Sommersdorf)에 있는 고대의 성의 지하 납골실 내부를 조사하였다.
이 납골실은 넓고 건조한 땅이 갈라진 틈 사이에 위치하고 있었다. 이 성은 당시 폰 크라일스하임 남작(Freiherr von Crailsheim)의 소유였다. 폰 폴 씨는 이 납골실에서 관 뚜껑을 열고 관속에 누워 있는 갈색의 미이라를 발견하였다. 이 미이라가 입고 있던 옷과 지니고 있던 보석은 19 세기 초 프랑스인 들이 침입했을 때 도난 당했다.
30 년 전쟁 동안 스웨덴 군에서 대령으로 근무했던 좀머스도르프 출신의 한 사람만이 말을 탈 때 신은 장화를 신고 미이라가 되어 있다. 폰 폴 씨는 이 납골실의 앞방에서 수많은 도마뱀과 개구리의 미이라를 발견하였다. 그는 암스테르담에서 특별 허가를 얻어서 네덜란드의 유명한 해군 제독이었던 디 뤼티르(de Ruyter) 씨의 미이라를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이 미이라는 방부 처리를 하지 않고 미이라가 되었다. 왜냐하면 강한 유해 지기가 있는 장소에 관이 놓여있기 때문이었다.
브레멘 대성당에도 미이라가 있다. 브레멘 출신의 의사인 잔더(Sander)씨가 기감봉으로 미이라를 만드는 원인으로 넓은 유해 지기를 기감 조사하였다. 이 유해 지기대를 벗어나서 앉힌 묘지의 시신들은 부패하였다. 폰 폴 씨는 중국의 매장 풍습에 대해서도 언급을 하고 있다. 그들은 시신을 공동 묘지에 매장하지 않고 독립된 단독 공간에 매장을 한다는 것이다. 시신을 매장하기 전에 지관이 땅의 나쁜 마귀를 조사를 하게 한다. 폰 폴 씨는 실제로는 지관이 유해 지기를 조사를 하고, 유해 지기를 시신이 받게 되면 시신의 휴식이 방해를 받는다고 보았던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유해 지기가 시신을 미이라로 만드는 작용을 한다는 것은 이집트의 신관들만이 알고 있었던 것만이 아니라 게르만족의 초기 역사에도 알고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 기원 전 4 세기경의 켈트족의 마을이 쉬투트가르트(Stuttgart) 근처의 호흐도르프에서 발견이 되었는 데, 이 마을을 기감추 시계 방향으로 회전하는 양의 극성(+)을 가진 지역에 위치하고 있어서 시신을 미이라화 시키기 좋은 자리를 잡았던 것으로 보여진다.